그럼에도 나는 배려가 뱄으면 한다
독서모임 동료 5명이 KTX를 타고 서울로 연극을 보러 갔다가 연극 공연 전에 종묘를 구경하고 점심을 먹기 위해 식당을 찾았다. 미리 봐 둔 식당을 검색해 보았으나 종묘에서 거리가 조금 있었다. 택시를 타려면 두 대를 불러야 했기에 가까운 종묘 근처에서 찾기로 했다. 그러나 점심시간인데도 종묘 외곽길은 한산했고 점심을 먹을 수 있는 식당은 없었다. 파스타 집이 한 곳 있었으나 파스타를 먹지 못하는 한 분이 계셔서 한식 위주로 찾았다. 그러나 웬걸, 파스타든 한식이든 들어갈 수 있는 식당 자체가 보이지 않았다.
이 길이 맞나? 음식점 거리가 맞나 싶을 정도로 일요일인데도 대부분의 가게는 문이 닫혔고 한산했다. 큰길을 건너 골목을 들어가도 상황은 조금 나아져 군데군데 가게가 보였지만 이미 그곳은 만석이었으며 예약이 찬 상태였다. 식사를 하기도 전에 다리부터 너무 아파 아무 곳이나 주저앉고 싶었다. 어디로 가야 식당이 있는지 물어보려 해도 물을 곳도 없었다.
여긴 우리가 찾던 곳이 아니야. 사실 한 선생님이 익선동을 검색하고 있었다. 핫한 곳이라 서울 나들이하면 가보려 찍어둔 곳이었다. 그러나 내가 가고 싶다고 갈 수 있는 곳은 아니기에 모두의 의견을 들어보기로 했다. 또한 익선동은 택시로 움직여야 했고 연극 관람 시간을 맞추기 위해선 익선동보다 세종문화회관 근처로 가야 했다. 그래서 조금 더 편한 곳으로 이동하자 했다. 세종 문화회관 근처 카레집을 예약해 놓고 택시로 이동했다. 창덕궁을 지나 예전에 한 번 가 보았던 익숙한 골목길이 보이고 경복궁을 지나 제법 한참을 달렸던 것 같다. 택시는 골목길을 향해 오르다가 어느 교회 앞에 멈추었고 우리를 내리게 했다. 일요일 교회 손님으로 좁은 골목길이 인산인해로 넘쳐났다.
분명 가게 간판이 바로 앞에 보이는데 건물이 보이지 않는다. 들어가는 입구를 찾을 수 없어 이리저리 헤매다 겨우 찾아 들어간 곳, 별로 내키지 않은 카레집이었다. 제일 찾기 쉽고 제일 만만하다 여기는 메뉴 앞에서 그래도 조금 더 구미에 당기는 카레를 골랐다. 각기 다른 카레를 주문해 맛보기도 하며 나름 고급진 음식을 먹는다 세뇌시키면서도 역시 카레는 내가 하는 게 젤 맛있어하는 말이 이구동성으로 나올 정도였다. 주인장은 우리에게 카레는 더 주문할 수 있다고 하기에 내가 더 주문을 했다.
"저, 죄송하지만 카레 좀 더 주실 수 있나요?"
그러자 옆에 있던 친구가 나를 툭 친다. 나는 사투리가 귀에 거슬렸나 싶어 좀 더 부드럽게 할 걸 약간 움츠러들어 있는데 아닌 게 아니라 추가 주문을 하는데 왜 죄송하다고 하냐며 언짢아한다. 난 원하는 것을 시키는 입장에서 상대를 위한 배려라고 생각했는데.
"응, 그냥, 그게 자연스레 나온 말이야."
"뭐가 죄송한데?"
순간 나는 할 말을 잃어 묵묵부답했다.
내가 잘못한 것인가? 머리를 흔들며 내가 잘못했다 말하는 친구의 행동이 못마땅했다. 그걸 굳이 충고랍시고 해야 했을까? 그게 잘못된 행동이냐고 말하고 싶었지만 얼굴 붉히기 싫어 관두고 말았다.
일전에 이런 일이 있었다. 커피를 주문하는데 나는 신맛 나는 커피를 좋아하니 먼저 주문을 했고 다른 샘들도 자기 취향의 주문을 했는데 이 친구는 디카페인을 시킬까 신맛을 시킬까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자 옆의 샘이 디카페인은 디카페인으로 만들기 위해 어떤 작업을 한다며 조언을 하자 나도 옆에서 한마디 거들고 있었다. 그러자 이 친구가 아, 알고 있어, 알고 있다고! 하면서 손가락으로 내 말을 막았다. 말을 하다 멈춰버리고 만 것이다. 아, 이 친구는 자기주장이 엄청 강한데 누군가 훈수를 두면 기분 나빠하는구나를 직감하고 말았다. 그 친구를 알고 난 후 6개월 정도 됐을 때의 일이다.
연극을 보면서 친구의 충고가 사라졌지만 그럼에도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내가 돈을 지불하고 얻든 공짜로 얻든 상대를 기분 나쁘게 하지 않는 말인데, 내가 돈을 지불하고 얻는 재화라면 당연히 죄송하다는 말은 하지 않았어야 했는지 모르겠다. 그냥 후룩 카레를 삼키듯 넘어가면 되는데 친구의 말이 틀린 게 아니라 내가 꾸지람을 들어야 하는 말인가를 생각하게 만든다. 나의 배려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그런 배려가 몸에 배기를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