쌓이고 쌓여 자산이 된다
자기 분야에서 아직도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면서도 묵묵히 길을 가는 사람들이 많다. 실력이 없어서도 아니다. 다만 이것도 나는 운이 없어서라고 여기기도 한다. 알랭 드 보통은 <불안>에서 사람이 불안해하는 여러 가지 이유 중 하나는 지위가 낮으면 사랑을 받지 못한다고 여기는 데서 불안이 온다고 말한다. 사랑은 일종의 존중이라고 말하며 남들로부터 존경을 받으려면 예측불가능한 조건이 따라줘야 한다고도 말하는데 이 조건 중 하나가 '운'이다. 만일 신이 나를 지켜주지 않는다면 끝났다고 말하며 '불운'이 실패를 설명하는 그럴듯한 이유가 될 수 있다면 운도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듯 남들이 어느 순간 알아주거나 서바이벌 게임에서 1등을 해서 자신을 알아주는 눈을 발견한다면 탄탄대로를 걸을 수 있으며 소위 꽃길을 걸을 수도 있는 절호의 찬스이다. 이 기회를 잡지 못해 많은 사람들이 아직까지도 열심히 움직이고 노력하고 있다.
일전에 어느 무명가수의 입문기를 본 적이 있다. 카리스마 넘치는 그의 노래 실력을 이제라도 알리고 싶어 했다. 그는 자신이 무명으로 산 지 20년이 넘었다고 했다. 한때 유명한 드라마의 OST를 불렀고 드라마가 시청률을 올리면서 그의 노래도 함께 성공적으로 될 뻔했다. 그리고는 끝이었다. 그러나 그는 여러 음악 작업을 했고 다른 가수의 노랫말을 써 주기도 했고 작곡을 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주위에서 노래 실력을 뽐내보라고, 이제는 그 유명했던 노래의 주인공을 알릴 때도 됐다고 하면서 음악 서바이벌에 나온 가수의 이야기를 듣고 아직도 우리 주변에는 인기를 얻지 못해도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오래도록 하고 싶은 일을 묵묵히 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실감했다. 용기를 얻었다.
나도 이제 20년 차를 넘기면서 한때는 인기가 많아 유명해지기도 했었고 또 한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만두고 다른 길로 갈까 수없이 고민하기도 했다. 물론 다른 길로 갔더라도 그런 고민을 했을 것이다. 중요한 건 아직까지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고 더 할 수 있길 바라고 있다는 것이다. 회원이 점차 줄어들어 생계가 어쩌면 막막해질 날이 올 수도 있지만 남이 알아주지 않으면 어때? 하면서도 꾸준히 계속 이어가고 싶은 마음이다. 나 스스로 20년을 하고도 아직 전문가라 부르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내 일을 사랑하고 좋아한다.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일을 하면 인기가 조금 없어도 돈을 조금 못 벌어도 괜찮다. 비록 20년의 무명생활이 누군가는 아직 빛을 보지 못했다 해도 수많은 세월 동안 쌓이고 쌓여 자산이 되고 보물이 되지 않을까. 혹여 다른 어떤 일을 하더라도 밑바탕이 탄탄하다면 무슨 일이든 헤쳐나갈 수 있지 않을까 믿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