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인 조르바>ㅡ니코스 카잔차키스
내가 아는 가장 멋진 남자.
십 년 전 이 책을 읽었을 때의 감상이었다.
내용은 딱히 기억에 남는 건 없었지만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자유롭고 낭만적이고 온몸으로 삶의 격정을 받아들이는, 지금 바로 자신 앞에 놓인 인생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사는 조르바, 그였다.
인생은 결코 머리로만 살아지는 게 아니고 분석하고 계산적으로만 살아지는 것도 아니고 거침없는 삶의 자유를 갈망하고 우리를 옥죄는 억압으로부터 헤쳐나가라고 조르바는 가르쳤다. 머리로만 살지 말고 후회하고 사는 과거의 삶 속에서 벗어나라고, 삶에 뛰어들어 자유를 갈망하라고 조르바는 외쳤다.
우리에게 없는 자유가 그에게는 있었다.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기 위해선 우선 그리스 본토와 크레타 섬의 역사적이고 정치적인 배경을 알고 있어야 이 소설을 이해하기 쉽다. 그냥 소설을 읽기에는 조금 지루할 수도 있고 지극히 조르바의 개인적인 일에 시선을 던질 수밖에 없다. 나도 처음 읽을 땐 조르바의 삶에 치중해 읽었었다면 지금은 그리스의 역사를 알고 읽으니 훨씬 다채롭게 읽히는 건 사실이다. 그래서 책 뒤의 옮긴이의 말을 먼저 읽고 시작하면 좋겠다.
그리스는 20세기 초 튀르키에 전쟁과 발칸전쟁,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혼란의 시대에 휩싸여 있었다. 특히 크레타섬은 그리스 사회의 불안정한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카찬차키스가 태어난 크레타섬은 그리스 본토와 달리 튀르키예의 지배하에 있었고 전통적 가치관과 근대화 사이에서 갈등하던 시기였다. 또한 빈부격차가 심했으며 노동자의 힘들고 고단한 삶이 그대로 드러난다. 여성의 권리는 찾아보기 힘들었고 성적으로도 억압받고 무시당했던 시대였다.
기존의 가치관이 흔들리던 시기 작가는 조르바를 통해 인간 본연의 자유와 삶의 본질을 찾으려 했고 지식은 인간을 구원하지 못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해 주고 있다.
나는 책벌레다. 크레타섬 해안에 폐광이 된 곳을 빌려 책벌레와 거리가 먼 노동자 농부들과 생활해 보기로 하고 크레타섬으로 가면서 단테의 신곡을 읽는다. 그곳에서 60대의 노인을 만나 인간의 이성에 대해 논한다. 노인은 알렉시스 조르바, 산루트 악기를 다루는 농부이며 대가리가 납작 케이크처럼 생겨 빵집 가래삽이라고도 불린다. 나는 산루트를 배우고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간다. 인간도 믿지 못하고 하느님도 믿지 못하고 오직 조르바만 믿는다고 말한다.
조르바는 책이 아닌 삶에서 생생한 체험으로 온몸 가득한 삶을 보여준다. 삶은 지성으로 해결할 수 없다고 말한다. 조르바는 상대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을 땐 춤으로 보여주는 사람이다. 굴러가는 돌멩이를 보면서도 돌멩이는 사면에서 생명을 얻는다고 표현한다. 그는 매일 아침 눈앞에 펼쳐지는 새로운 세계를 보는 게 아니라 창조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내가 조르바를 만난 곳은 배다. 배는 육지와 바다의 경계의 공간이며 문명과 자연을 구분 짓는 곳이기도 한 그 모호한 경계에서 조르바를 만나 책벌레로서의 자신을 탈피해 본능에 충실하고 노동에 열광하며 욕망의 세계로 들어갈 준비를 하는 곳이다. 하여 나는 깨달음을 찾아가는 인간이며 조르바는 살아 있는 인간으로 구현된다.
ㅡ결국 내가 깨달은 것은 단테 신곡은 짐이며 살과 피로 싸우고 죽이고 입을 맞추면서 펜과 잉크로 배우려던 것들을 조르바는 고스란히 살아왔다는 것이다. 고독 속에서 의자에 눌어붙어 풀어보려던 문제를 조르바는 칼 한 자루로 산속의 맑은 대기를 풀어버린 것이다. ㅡp331
갈탄 사업을 하던 사업체가 거덜 나던 날 조르바는 춤을 췄다. 사업체 하나를 춤으로 변화시킨 것이다. 나는 조르바를 위대한 자유인을 겨우 책 한 권으로 변화시켰을 뿐이라고 말하며 육체와 영혼은 하나라고 말한다.
ㅡ내가 해방감을 맛본 것은 모든 것이 끝난 순간이었다. 엄청나게 복잡한 미궁에 들어있다가 자유가 구석에서 놀고 있는 걸 발견했다. 나는 자유의 여신과 함께 놀았다. 외부적으로 참패했으나 속으로는 정복자가 되었다고 느끼는 순간 인간은 더할 나위 없는 긍지와 환희를 느낀다. ㅡp420
카잔차키스는 크레타섬을 이렇게 표현한다.
한 번 부르면 가슴이 뛰고
두 번 부르면 코끝이 뜨거워지는 이름
기적이다, 내가 크레타 사람이라는 것은.
그러나 그는 안타깝게도 노벨문학상을 받지 못했다.
콜린 윌슨은 말한다.
그가 그리스인이라는 게 비극이다. 만약 그가 <카잔초프스키>였다면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와 토스트예프스키와 어깨를 나란히 했을 것이라고.
<그리스인 조르바>는 그리스도에 대한 해석이 그리스 정교회의 신성을 모독한 작품이었다고 말한다. 로마교황청의 노여움을 사 파문당했고 그의 무덤은 초라하다. 1957년 독일에서 죽은 카잔차키스의 유해를 아테네 매장을 허락하지 않아 크레타의 이라클리온에 묻혔다고 전한다. 아마 카잔차키스가 이 책을 쓸 수밖에 없었던 시대적 배경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그리스 정교에서 파문당한 사람의 무덤에만 쓰인다는 수수하기 짝이 없는 나무 십자가가 박힌 메갈로카스트로의 한 모서리에 그의 무덤이 있다고 전하며 이남호 교수는 그의 나무 십자가에서 작가의 <꼬장꼬장함>을 읽었다고 표현했다고 전한다.
그의 묘비명이 아름답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그리스 여행을 한다면 이곳 크레타섬의 카잔차키스의 무덤은 꼭 들러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