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층거주자로서의 공생

반지하로부터의 수기ㅡ절자만화

by 어린왕자



地層 거주자는 건축물에서, 절반쯤이 지면보다 낮은 위치에 있는 층에 사는 사람들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여러 층으로 된 건물 따위에서 다른 층에 상대하여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반지하로 쉽게 불린다.

세종마루에서 출간한 <지층거주자:반지하로부터의 수기>는 제목도 흥미롭지만 만화라 더 이끌렸고 저자의 소개도 굉장히 독특하다. 일단 호기심을 일으키는 책으로는 압권이다.


이 책에서 '다리를 두 개 이상 가진 생물들에 대한 지속적인 묘사와 정신적, 물리적 상해 및 살해와 폭력적 묘사가 더해질 수 있다'라고 명시해 놓은 부분이 상당히 재미있다. 또한 '위의 소재에 취약하다면 열람 전 충분한 심호흡과 수분 충전 및 휴식을 권장한다'는 문구가 머리를 탁 치게 만드는 획기적인 걸작이다. 당장 덮어버릴 만한 책도 오히려 담담하게 펼쳐 보이게 만들어 버린다.


벌레에 취약한 인간이 바로 나다. 그런데 이를 악물고 몸서리를 치면서 벌레와 긴 시간을 동행해야 한다니. 책을 읽다 살아 순식간에 튀어나오면 어떡하지, 꿈틀거리면 어떡하지, 온갖 상상을 동원하지만 설마 잡아먹히겠냐 식의 배짱을 부려보기도 하며 두 눈을 부릅떠 본다.


일전에 수업을 하러 들른 집에서 중학생 아이가 뛰어나오면서 벌레를 좀 잡아달라 한다. 해맑은 얼굴을 아이에게 보였지만 내 얼굴은 이미 굳어있는 걸 그는 보지 못했다. 그 아이는 이미 불안과 공포 속에 뒤덮여 나를 구세주로 보고 있었다.

화장실 욕조에서 당당하게 일광을 즐기던 그 녀석을 본 순간 숨이 멎었다. 불안을 내비치면 안 될 것 같았기에 스프레이로 열 방을 먹이고는 파르르르 떠는 녀석을 휴지로 돌돌 말아 다시 비닐에 넣어 압사를 시켰다. 그러다 문득 저 녀석이 어딘가에 제 알들을 까렸을 텐데 그것들은 어쩌냐? 죽인다고 해서 끝날 일은 아니란 것을 늦게서야 깨닫고 말았다.

그러나 그것들은 엥간한 살충제로는 잘 죽지 않는다는 사실, 니체의 의지를 계승한 초 ㅡ파리보다 더 한 질김의 성질을 갖고 있는 그것들과

혼자 살 수 없는 환경이라면 어떻게든 같이 살 수밖에 없는데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지 않고 사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방치일까 살해일까 방생일까 가끔은 고민도 하게 만든다.


지층은
내 의지와 관계없이 타인의 기척에 의해 일상을 시작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나 지층에 사는 사람들은 미지의 타자에 의한 저벅저벅 걷는 발자국 소리에 몸을 일으키며 긴 하루를 시작하게 된다. 결코 기분 좋은 하루의 시작은 아니지만 함께 살려면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굳이 지층이 아니더라도 나는 내 머리 위의 집에서 쥐들과 함께 자랐고 살았다. 종이 천장을 마구잡이로 갉아먹고 뛰어다녀도 그리 크게 고민하지 않았다. 쥐똥이 우리에게 떨어지는 것도 아니었고 쥐오줌이 벽을 타고 내려오는 것도 아니어서인지 그걸 내 부모는 그냥 방치한 게 아니었을까 왜곡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아무리 합의된 동거가 아닐지라도 같이 살 수 있는 것들이 있고 아닌 것들이 있다. 물론 그들이 먼저 진을 치고 살고 있던 공간에 인간이 무단으로 침입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백악기 때부터 살아온 제왕 같은 그들일지라도 무섭고 끔찍한 것은 인간의 시점으로 볼 때 상처로 남을지언정 모두 없애고 보는 게 맞을까.


내가 끌여들이지 않았지만 어쩌면 나보다 더 이전에 그들이 먼저 터를 잡고 수만 년 동안을 눌러앉은 것일지도 모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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