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내비치며 나아가는

<치유의 빛> ㅡ강화길

by 어린왕자



고통은 왜 항상 존재할까. 어째서 사라지지 않은 걸까. 고통 때문에 무너지기도 하고 그 고통으로 인해 상실도 겪고 배신감도 갖고 놀라움도 갖는다. 우리 모두는 그렇다.

강화길의 <치유의 빛>은 나를 싫어하는 마음을 잊기 위해서, 그래서 늘 무언가에 열중하고, 아팠던 나를 기억하지 않기 위해 때론 나를 떠올리지 않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의 고통을 치유해 나가는 재생의 빛이 스며드는 책이다.

나에게 강화길의 소설은 색다르다. 평이하게 읽히지만 평범하지 않고 묵직한 여운을 늘 가슴에 남기게 된다. 이를테면 짧은 한 마디의 대화로도 많은 의미를 생각해 보게 만드는 오묘한 설렘이 있다. 다 읽고 책을 덮었는데 뭔가 실핏줄 같은 고통이 남는 듯 가늘게 가늘게 해석되지 않은 문장이 떠돌다 마음에 떡하니 가라앉는 느낌이다.


덩치가 컸다.

그게 왜?

지우의 팔뚝이 너무 두꺼웠다.

그게 왜?

상관없지. 상관없어.

그런 것처럼.



최초의 기억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이 모여드는 채수회관에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다. 어떤 모습들이 자신에게 기억되는 최초의 모습일까. 지금의 모습이 싫어서, 잊기 위해서 존재하는, 떠올리지 않기 위해서 각자 자신들의 방법으로 해결하지 못한 사람들이 프로젝트를 통해 새로운 자기로 대면하기 위해서 모였다.

때로는 병원보다 낫기 때문에, 또 어쩌면 병원에 가도 소용없기에 이곳을 택했을 수도 있다. 절박한 사람들이 종종 찾는 곳, 죽음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살아 있는 동안 사는 것처럼 살기 위해 가장 절절한 마음으로 자신을 내비치며 치유를 향해 나아간다.

이곳에 있으면 수치심을 느끼지 않을 것 같고 두려움도 갖지 않을 것 같지만 그런 삶 속에서도 하루를 보내면서 이곳에 남아야 하는 이유를 모를 때도 있다. 자신의 삶에서 어떤 통증이 존재할 때 숨기지 않고 자신의 병이 나을까 의구심을 갖기도 하지만 그것이 무엇이든 목표의식이 있어야 치유가 가능하지 않을까.

자신이 뚱뚱해서 모든 것이 엇나갔다고 생각한 그는 친구가 자신에게 뚱뚱해서 같이 놀기 싫다는 말을 듣고 그 말이 나쁜 말인 줄은 알았지만 그 아이가 못된 아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얼마나 자기가 못났으면 같이 놀기 창피하다 했을까 싶어 그는 그 아이를 만나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다 말한다. 그것이 어쩌면 그의 최초의 기억인지도 모른다.


그가 그 아이와 함께 하기 위해서 살을 빼기 시작했고 그 아이와 채수회관에서 만났다. 한 명은 살을 빼기 위해서, 또 다른 한 명은 죽음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서.

우리가 진짜 원하는 건 뭘까. 우리는 무엇을 간절히 원할까. 간절히 무언가를 원하면 간절히, 정말 간절하게 더 나은 삶을 위해 고통받기 이전의 삶을 돌려받기 위해서라면 할 줄 알아서 하는 일이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일, 그래서 의미를 가질 수 있는 일을 하게 되는지도 모른다.

이 책이 그렇다. 고통은 항상 존재하지만 옆에 있는 누군가가 좀은 알아주고 이해해 준다면 그 고통이 사라지진 않지만 옅어질 순 있지 않을까. 그래서 친구에게 못된 말을 듣기 전의 자신의 최초의 좋은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어 치유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마음이 돋아나고 있다.


#치유의빛 #강화길 #은행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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