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진 바지주머니를 더듬었던 날을 떠올리며

<찬란>을 읊조리다

by 어린왕자


내 삶의 찬란은

내 엄마와 아버지와 형제가

고향이라고 생긴 이곳을

고향으로 여기고 살았던 때

화사한 꽃이 피어나는 봄이면

우리는 씨 뿌리기 바빴던 그때를

무덥던 여름이면

상추밭에 쭈그리고 앉아 불평을 땄던

그때를

벼가 익어가는 가을이면

아궁이에 불 지필 장작을

미리 숙제를 하듯 쟁여놓던

그때를

결코 찬란이었다 할 수 있을까

어린 열다섯의 아이는

해진 아버지의 바지춤이 매달린

차가운 시멘트 벽에 붙어 서서

동전 몇 닢 꺼내려 숨소리를 죽인 채

십 원 오십 원

달아오르는 마음을 붙잡아

무섭도록 온겨울밤을 보냈던

그때가 찬란이었을까

지금껏으로도 많이 아름다웠다 싶은

사계절을 돌면서

그토록 찬란했던 삶을 또 언제 만날까

아버지의 축 늘어진 바짓가랑이를

또 어느 해 만져볼 수 있을까


이병률 시인의 <찬란>을 읊으면서

살고자 하는 일이 찬란이었음을

살아내고자 했던 그 삶들이 찬란이었음을

안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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