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캐 본 적은 없구나!
칡을 캐 본 적은 없지만 많이 먹어 보았다.
칡을 우째 캐요?
우째 캐긴? 캐면 되지?
어떤 긴데요?
그렇게 시작된 칡뿌리에 대한 설전이 시작되었다.
책을 읽거나 문서에서 칡을 접할 때면 나는 고민에 빠진다. 어떤 것이 칡인지 한 번도 캐 본 적은 없는데 왜 많이 캐 본 느낌이 들까.
어릴 적 칡을 캐러 다니는 동네 오빠들을 따라다닌 적 많다. 칡을 캐서 하나 씹어 먹으라고 던져 주면 이빨로 주욱 뜯어내 꼭꼭 씹어 먹던 기억도 있다. 쌉싸름한 첫맛은 잊을 수 없고 다디단 끝맛은 오래도록 입안에 감돌았다. 여하튼 따라다니면서 좋은 칡은 다 먹고 다녔다. 나무뿌리로만 여겼던 묵직하고 거칠었던 것이 건강을 책임지는 칡이었다.
오래된 기억은 왜곡되기도 한다. 꼭 내가 캐서 먹었던 것처럼 누군가와 칡 얘기를 할 때면 으레 '나 어릴 때 많이 캐 먹었다'라고 할 만큼 알고 보면 전부 거짓부렁이다. 오빠를 따라다니면서 얻어먹은 것들을 내가 캔 것 마냥 왜곡시켜 버린다. 그러면 옆에 있는 사람들 일부는 믿어버린다. 알고 하는 거짓말이 아니라 모르고 하는 거짓말이다.
어릴 적 함께 놀았던 고향 언니와 친구, 그리고 동생들이 모여 최근에 모임 하나를 만들었다. 엄마도 떠났고 아버지도 떠난 마을에서 나는 조그만 땅덩어리 하나를 짊어지고 고향이라는 단어를 밟으며 서 있는 중이다.
봄바람이 심하게 분다. 그 옛날 도둑놈 잡기 놀이했던 화장실을 사이에 두고 노랗게 지어진 카페에 앉아 칡 얘기가 나왔다. 칡뿌리를 캐서 주던 오빠가 자기 오빠였다는 언니는 오늘 퇴직을 했다. 그 언니의 입에서 칡 얘기가 술술 곶감 엮듯 엮었다.
"야, 우리는 칡 캐 본 적 없다. 얻어만 먹었다."
"그래? 그런데 나는 왜 캐 먹었다고 기억하지?"
그렇게 캐 먹었던 칡은 돌고 돌아도 내가 캔 적은 없었다고 결론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