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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린왕자 Feb 19. 2024

길 위에 서성이는 인생, 부지런한 꽃씨 하나 뿌려진다면

'항상 봄처럼 부지런해라'는 조병화 시인의 시구가

해마다 봄이 되면 떠오른다.


여러 꽃들이 앞다퉈 피고 이쁨을 뽐내며 자랑할 날도 그리 길지 않기 때문에 항상 먼저 부지런해야 한다.


어떤 꽃을 먼저 봐야 할까.

어디로 먼저 가야 할까.

몸도 부지런해지고 마음도 부지런해지는 그런 봄이다.


봄의 전령사 홍매화는 마음까지 붉게 물들인다.


어스름이 내린 곳에서 처음 만난

내 붉은 마음 둘 데 없어

가느다란 가지 끝에 포개어

수줍게 피어나고 있다.

겹겹이 쌓인 그리움을 풀어헤치고

나는 너를 만나러 갔다

문득 찾아가도 반갑게 손 내밀어

길게 포옹하고 돌아섰다

사람 없는 길목에

지는 해 바라보며 섰다

반쯤 걸린 햇살이 구름 속에 머물 때도

피어난다 소리 없이 고개 내밀고 섰다

바람을 타고 날아온

더러 반갑지 않은 손님일지라도

봄비에 젖어 쪼그라든 몸짓이라 할지라도

아무도 모르게 지는 해 바라보며 섰다

붉은 마음에 밀려서

아직 꽃봉오리 가냘프게 피어나

아무도 돌아보지 않아 설운 목련이지만

화사한 봄날

모든 이의 어깨 위로 사뿐히 꽃잎 펼치리라

거친 모래를 헤집고

힘차게 솟아오른다 겁도 없이

고개 치켜들고 메마른 가지를 향해

쑤욱~~ 천둥 치듯 솟구친다

길바닥에 나앉은 뿌리를 어루만져

내 너를 잊을 수 없다 소리친다

두터운 초록잎 사이로

눈이 부시게 솟아나는

너는 누구더냐


흩날리는 꽃씨 하나 본 사람 있나요

길바닥에 처연히 앉아 나뒹구는

몹쓸 놈의 씨앗 하나

등불 밝히듯 저리 노랗게 길을 밝히네요

길 위에 서성이는 인생에도

부지런한 꽃씨 하나 뿌려진다면

봄날의 화사함으로 다시 피어날 것을

마구마구 짓밟히는 인생도

아무렇지 않다 위로를 던지는


그런 봄날이다


ㅡ어린 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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