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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린왕자 Feb 12. 2024

익숙한 듯 낯선 풍경

인생은 지금

카페 딜

텅 빈 집이다.


너무 익숙한 듯 너무 낯선 풍경이다.


설이라고 서울살이 하는 자식이 내려왔다.  이제 나도 내 집에서 자식을 맞는다. 어느덧 그럴 나이가 되었다. 여느 때 같으면 차례를 지내고 조금씩 싸 주는 음식을 받아 연휴를 보냈는데 품을 떠나 있는 자식이 부모를 보러 내려오니 이제는 내가 앉아서 기다려야 한다. 이곳저곳  내가 움직이지 않아 좋다. 내가 차례를 지내러 가지 않아서 좋다.  


명절의 의미가 색되어 간다. 시대가 변하니 애써 명절에 차례를 지내야 할까 하는 것도 고려해 보게 되고 오며 가며 차 막히고 힘드니 평소에 시간 날 때 반가운 얼굴 한 번 보자는 말이 나온다.  이제는 그래야 한다.  더구나 젊은 새댁들은 명절이어도 시댁에 제사 지내러 가지 않으려 한다.  얼굴도 모르는 그 남자의 할아버지 할머니 제사를 왜 힘들게 내가 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맞다.   우리는 그저 하라면 하라는 대로,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고 살았다. 그렇게 열심히 일하고도, 친정 한 번 제대로 가 보지 못했으면서도 무시당하고 살았던, 바보처럼 산 세월이었다.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제사가 뭘까. 제사와 명절의 차례로 인해서 가족의 끈이 연결되었다면 이제는 제사나 명절이 아니어도 충분히 끈을 연결하는 구심점은 있다. 내가 받았던 관습을 다음 세대에 그대로 물려준다는 건 너무 이기적이다. 나는 아이들에게 가끔 얘기한다. 엄마 제사 때 '어머니, 맛난 거 많이 드셔요' 하지 말고 평소에 맛난 거 사 먹으라고 용돈도 많이 주고, 좋은 데 놀러도 보내달라고. 부모를 기억하기 위한 것이 제사라면 굳이 제사가 아니더라도 부모를 기릴 수 있는 날은 있다.  차라리 엄마 제사에 형제들 모여 여행을 하라고, 그렇게 이른다.  그게 요즘 사람들 트렌드에 맞는 상황이 아닐까 싶다.



사위를 본 친구가 설날이 힘들었다 토로한다. 부모로서 자식을 맞는 즐거움이야 분명 있지만 마음이 불편했나 보다. 사위를 맞고 첫 명절이며 남편 제사가 마침 설 저녁이다 보니 친구를 먼저 보러 오라고 당부를 했단다.  장모를 뵈러 와야 하는 게 당연함이 아닌 게 된 요즘에 애써 오라고 한 건 장인의 기제를 지내야 하기 때문이리라. 첫 기제를 출가한 자식과 사위와 함께 하고 싶었던 마음이리라.  나는 그게 당연하다고 했다. 처음이니까 인사를 드려야 한다고. 그러나 또 한편으론 고개가 갸우뚱거려진다. 맞는지도 모르겠다.


이틀 전에 왔다가 사흘 째 되는 날 올라갔다며 자식을 맞이하는 게 쉽고 즐거운 일만은 아니라 말한다. 괜히 눈치 보이고 딸한테도 일 시키기가 쉽진 않고 좁은 공간에서 있다 보니 갑갑하기도 하고.  저들은 자기들이 좋아하는 강아지를 데리고 와 함께 노니 불편함이 덜 할지 모르겠지만 정작 당사자는 혼자 준비를 다 해야 했단다.  처음이니까 그랬을까.  처음이니까 너희들은 앉아 쉬어라 내가 할게 그랬던 게 옳은 일이었을까. 예전엔 당연했던 게 요즘엔 분명 당연한 게 아님이 돼 버렸다. 출가한 자식들이 명절엔 각기 자기 부모가 있는 집으로 간다는 현실이다. 거기에도 고개가 끄덕여진다.





우리 엄마는 일 년에 한 번 찾아오기도 힘든 사위를 맞으면서도 얼마나 마음이 힘드셨을까.  명절이라도 휴일을 모두 시댁에 가서 보내는 딸이 휴일 마지막 날, 그것도 저녁쯤에 찾아오는 딸을 기다리느라 얼마나 그리워했을까. 또한 얼마나 그들이 한편으론 괘씸하고 미웠을까. 시댁에서 친정을 가라 얘기하지 않으면 나 갈게요 할 수도 없었다. 왜 못 했는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반항 한 번 못하고 살았다. 몇 년을 그러다 보니 그때는 그것이 당연하다 여겼다.  


사위가 불편했다는 친구의 말이 공감되어 깊은 탄식이 새어 나왔다. 몇 시간밖에 보지 못하는 딸 내외를 위해 아침상을 차려놓고도 깨우지 못하고 행여 찬이 식을까 안타까워도 일어나라 말하지 않았던 우리 엄마. 방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흔들리지 않는 그림자만 바라보았던 우리 엄마였다. 딸보다도 사위에 대한 불편함이지 않았을까 애써 노부모 마음이 그립다.




서울살이 하는 작은 녀석은 오자마자 친구를 만나러 나갔다 들어와 잠시 인사치레로 어른들께 인사 한 번 건네고는 또 나갔다. 붙잡지도 않지만 부모는 그렇게 후순위가 돼 버렸다.

아이가 온다면 반갑고 간다면 또 다음 만날 날을 혼자 기약한다.  애써 언제 또 올 거냐 묻지도 않는다.  그렇다한들 언제 올게요 답을 듣지 못할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자주 못 봐 처음엔 서운한 마음이 컸는데 지금은 아무렇지 않다.


 부모가 마음을 비워야 한다는 것도 안다.  


텅 빈 집이지만 마음은 행복하다.


이제 마음으로 여행하는 날을 만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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