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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린왕자 Apr 18. 2024

혼자 지나치게 애쓰지 마세요

<돌봄의 온도>를 읽고ㅡ

  부모를 돌보건 자식을 돌보건 돌봄은 힘든 일이다. 특히 치매 환자를 돌보는 건 너무나 고통스러운 일이고 개인적  일은 할 수도 없이 힘든 일이다. 이제 이 돌봄이 개인적인 문제가 아닌 사회적 문제로 확대해 함께 고민해 나가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돌봄의 온도> 저자이며  에세이스트인 이은주 요양보호사는 부모 돌봄으로 인해  경력단절이 되거나 독신인 자식이 홀로 떠안게 되는 부모 돌봄의 과정에서 이제는 더 이상 개인의 노력이나 헌신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돌봄으로 받아들여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고 말한다. 또한 부모 돌봄으로 인해 일상생활을 정상적으로 할 수 없게 되었다고 해서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될 사회적 분위기도 필요하다고 말한다.


  또한 부모가 건강하실 때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들다 보면  돌봄으로 인한 지속가능한 회복탄력성을 갖게 된다고 한다.

 내 어머니는 치매는 아니었다. 한창 일하시던 젊은 나이 일흔둘에 쓰러지셔서 그 후로도 오랫동안 병원에서 요양생활을 하셔야 했다. 그녀에게도 돌봄이 절실했던 때였다. 쓰러지셨을 땐 중환자실에서 간호사의 돌봄을 받아야 했고 좀 더 나은 돌봄을 받고자 큰 병원으로 옮겨야 했고 결국 자식들 손보다 병원손을 빌리는 게 여러모로 낫다는 판단에 퇴원 후엔  요양병원을 택했다.


 내 아이들이 중학교를 다니던 무렵, 나는 내 나이  중년에 엄마를 돌봐야 했다. 원래가  깔끔한 성격이라 엄마는 남의 손을 빌리는 걸 극구 반대하셨고 심지어 당신 집 놔두고 왜 여기 있어야 되냐며 당신 집으로 간다고 난리를 부리던 시간도 꽤 많았었다. 이제 이곳이 어쩔 수 없는 당신 집이라 여기며 사시라 가녀린 딸은 눈물로 호소하기도 했다.


 아이들 학교를 보내고 병원으로 가서 난 제일 먼저 엄마를 데리고 나왔다. 아침을 드신 후라 어떤 때는 공원에 앉아 계시기도 했고 어떤 때는 혼자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고 계실 때도 있었다.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를 엄마의 마음은 알아차릴 새도 없이 운동을 시켰다. 한 시간 운동을 시키고 다시 들어가 목욕을 시키고. 갈아입을 옷은 내가 집으로 들고 가 씻어 왔다. 내 손으로 엄마의 몸을 씻기면서 그 옛날 당신이 내 어린 몸의 때를 벗겨내던 때를 떠올렸다. 그것에 대한 고마움은 아니지만 이제는 내가 엄마를 씻겨드리는구나 애써 슬픔을 삼키며 엄마의 아프고 외로운 마음을 덜어드리고 싶었다. 그리곤 점심 드시는 걸 도와드리고 병원을 나섰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두 번 넘기면서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병원과 일터를 오갔다.  힘들다는 육체적 표현보다 함께 아픔을 감내해야 하는 무게가 더 힘들었다. 돌봄은 단지 신체적으로 하기 힘든 일을 도와주는 것 이상의 손길이 가는 노동이다. 정서적으로도 피폐해져 간다. 환자는 환자대로 가족은 가족대로. 그걸 나눠지고 있음에도 감당하긴 너무 크다.


 아이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졸업하고 군대를 갔을 때 아이는 외할머니의 병원을 자주 찾았다. 보여주고 싶지 않은 외할머니의 연약한 모습이었지만 그것이 어쩌면 아이에겐 또 다른 부모의 모습으로 다가왔으면 그러하길 바랐다. 좋은 것만 기억하고 있는 외할머니였다. 어서 오라 손짓했고 건강해라 부탁했다. 내 아이들도 할머니의 멋진 모습을 많이 떠올렸고 고마웠던 지난날을 많이 떠올려주어 고마웠다.


 엄마는 몸만 병원에 있었고 왼손이 조금 불편할 뿐이지 거동은 불편하지 않은 몸이었다. 식사를 제때 챙겨 드시지 못했고 뇌경색의 특징이 사람이 게을러져 간다는 것이다. 이걸 해야지, 저걸 해야지 찾아서 일을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성한 사람이 점점 바보가 되어가는 느낌이랄까. 전문적으로 돌보는 사람은 환자의 개인적인 이야기엔 그리 마음의 여유를 쓰지 않는다. 형식적인 돌봄 그것뿐이다. 마음을 헤아려주고 다가가 주는 건 환자 가족이 해야 할 몫이었다.


 엄마는 그렇게 매일 말을 조금씩 잃어갔다. 치매환자를 돌보던 저자가 엄마에 대한 기대를 내려놓을 때 가족의 말을 알아듣고 반응을 보이고 얘기도 나누었단 상황을 겪어본 나는 충분히 이해한다. 늙으면 아이 같다는 말. 더군다나 환자는.

 오랫동안 가족을 돌보면서 때론 지쳤고 때론 치열하게 살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유한한 시간 속에 살고 있는 우리는 자신도 돌보고 가족도 돌보고 환자도 돌보면서 사는 연대를 도모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짧지 않은 8년의 시간이었지만 돌봄의 시기가 지나고 나니 몹시 그리워지기도 하고 후회되기도 하다. 평범한 시간들이 아닌 그녀도 나도 모두가 낯섦에서 살아남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썼다. 좋았다가 나빴다가, 음이었다가 때론 암흑이었다가 했던 일들이 지금은 미안해지기도 했다. 어떨 때는 차라리 편안해지기도 했었다. 비우고 나니 편안해지더란 말 느꼈던 적도 많다.


 돌봄을 지옥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 몸도 마음도 쉬어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나 아니면 안 된다 하지 말고 그래도 나 아니어도 될 때를 만들어 쉬어가야 한다. 그래야 돌봄을 이어가며 돌봄의 온도를 유지할 수 있다고. 그러니까 내가 할 수 있는 사랑은 충분히 줄 수 있게 스스로를 다독이면서 지나치게 애쓰지 말라고.


 <돌봄의 온도>를 읽고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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