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겐 힘들 때마다 서로 의지하는 친구 녀석이 하나 있다. 이 친구랑 나랑 공통점은 가족의 아픔이 있는 것, 이성관계에서 큰 상처가 있다는 것, 그리고 주변사람들은 항상 밝은 사람인 줄 알고 있다는 것이다. 친구라는 것이 응당 그렇기도 하지만, 우리는 공통점이 많고 어떤 상처가 있는지 잘 알다보니 서로 더 염려해 주고, 힘들 때면 자기 일처럼 속상해하고 도와주기도 한다.
어제는 이 친구의 오피스텔에서 함께 와인을 마셨다. 잘 모르는 사람이 보면, 우리 둘 사이는 거의 브로맨스이다. 서로 마실 와인을 준비하고, 서로 기분 좋아졌으면 하는 마음에 선물도 준비해주었다. 특히, 이 날은 만나기 전에 서로 긍정적이고 밝은 이야기를 하자며 약속을 했다. 징징대지 말고, 오늘은 즐겁게 마시자! 가 모토였고 보다 더 나은 내일을 서로 염원하는 마음으로 만났다.
그러나 긍정적인 대화를 나눌 여력이 없는 우리 둘은 서로 만나자마자 알아차렸다. "너 우울하구나" 밝은 이야기는 못해도 적어도 징징 거리지만 말자는 마음 하나로, 우리는 아무 말도 없이 와인을 마셨다. 조용히 지금 마시는 와인의 맛에 대해 몇 가지 이야기정도만 하던중, 취기가 오르자 서로 말없이 바닥에 누워버렸다.
친구가 기르는 말티푸만 꼬리를 흔들며 친구와 내 품에 번갈아 가며 안겼다. 굳이 서로 무언가 말하지 않고 있음에도 무언가 편안했는데, 갑자기 좀 궁상맞다는 생각도 들었다.
한참 혈기왕성한 나이의 사내놈 둘이, 우울해하지 않기로 약속하며 아무 말 없이 술을 마시다가 누워서 강아지에게 품이나 내주는 모습이라니...
강아지는 홀로 속 편하게 품에 안겨서 드르렁 코도 골고, 꼬리도 치고 쓰다듬어 달라고 머리도 비비적거린다.
그래, 너라도 행복해라 하며 열심히 쓰다듬어줬다.
집에 돌아오는 전철 안에서 입은 바지에 갈색 말티푸 친구의 털이 몇 가닥 보여 털어 내려다가, 그래도 나 좋다고 안기는 녀석의 자취를 다 털어내면 더 쓸쓸해질 것만 같아 가만히 두었다.
매일 아침 힘내기로 하고선, 오늘도 참 궁상맞은 내 모습이 참 우습다.
내 속도 모르는 친구들은 내 인생은 이제 시작이라는데, 나는 왜이렇게 궁상맞게 굴고 싶은걸까?
나도 잘 모르겠다. 말티푸처럼 누군가에게 푹 안기고 싶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