깍두기여도 괜찮아

by Woodfire

깍두기여도 괜찮아



학구열 넘쳐 보이는 겉모습과는 다르게, 나는 운동을 참 좋아한다. 헬스, 러닝, 테니스, 배드민턴, 축구까지. 거의 매일 땀을 흘린다. 특히 누군가와 함께하는 운동을 좋아한다. 그런데 여기 딱 하나의 문제가 있다. 나는 공을 잘 다루지 못한다는 거다. 정확하게 말하면 그 누구보다 운동을 사랑하는데, 운동신경이 없다.


그래서 축구를 할 땐 늘 깍두기다.


매주 목요일 저녁은 축구를 하는 날이다. 퇴근하고 부랴부랴 짐을 챙겨서 축구장에 간다.

진료가 끝나면 몸도 마음도 좀 늘어져 있지만, 그 시간만큼은 꼭 지키고 싶어서 전철 플랫폼 사이를 매번 뛰어다닌다. 그렇게 1시간도 넘는 거리의 축구장을 향해 바삐 간다.

내 축구 동호회는 벌써 3년이 넘은 동호회다. 직업도 나이도 다 다르지만, 목요일 저녁이면 익숙한 얼굴들이 하나 둘 모인다.


애석하게도 내 뜨거운 열정과 달리 그들 사이에서 나는 제일 못한다. 이건 팀원 모두가 알고, 나도 안다. 심지어 나를 가장 사랑하는 우리 엄마조차도 “너는 어디서나 축구만큼은 제일 못할 거야”라고 말한다. 그렇다. 나는 자타공인 세모발이다. 그러다 보니 공이 내게 오면 공격 흐름이 끊길 때가 많고, 좋은 분위기를 어색하게 만드는 실수를 하기도 한다. 그러고 나면 팀원에게 미안해진다. 때로는 눈치도 보이고, 괜히 자꾸 작아진다.


특히 우울한 날은 더 그렇다. 공 하나를 놓친 게 단순한 실수 같지 않게 느껴지는 날이 있다. 진료 끝나고, 마음에 남았던 말들, 감정들, 그런 것들까지 느닷없이 몰려와 운동장에 있는 내 머리를 복잡하게 한다. 경기가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그런 날이면 혼자 괜히 조용해진다.


‘나 같은 사람이 빠지면 오히려 나을지도.’

‘나는 이렇게 열심히 하는 데도 왜 이렇게 못하지.’

이런 생각들이 날 괴롭히는 날들이 있다. 그러다 보면 “그만둘까?”란 생각까지 간다. 그런데 이상하게 다음 주가 되면 또 가게 된다. 몸이 피곤해도, 마음이 심란해도 말이다.


내가 어느덧 축구 동호회 참여한 지도 3년이나 지났다는 것을 알게 된 어느 날, 나조차도 놀랄 만큼 오래 이 모임을 나가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아마도 내가 축구를 너무 사랑해서는 아닌 것 같다. 그저 내가 실수해도 웃어주고, 그냥 “형, 오늘 괜찮았어요” 하고 가볍게 넘겨주는 동생들. 그런 사람들이 있어서 나는 다시 축구화를 신을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 같다.

(부디 내가 오해하는 것이 아니길 간절히 빌어본다…)


같이 운동하는 사람들이 내게 특별한 말을 해주는 건 아니다.

그냥 나를 아무렇지 않게 받아주는 분위기가 있다.

잘하지 않아도 그 자리에 있을 수 있다는, 그 느낌을 말이다.

돌이켜보니 그 느낌이 생각보다 나를 든든하게 지탱해주고 있었다.

그 자리에 있어도 괜찮다는, 그 단순한 허락이 나를 붙들고 있었다.


진료실에서 나는 자주 말한다.


“사람은 꼭 잘해야 괜찮은 게 아니에요.”

“민폐가 될까 봐 너무 움츠러들지 마세요.”


그런 말을 건네면서도 정작 나 자신은 그런 마음으로 있어 본 적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지금은 나 스스로 힘은 아니지만, 이러한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해주는 순간들이 있다. 깍두기인데도 함께 해주는 사람들. 잘 못해도, 여전히 내 자리를 남겨주는 사람들.


그 관계 안에서는 나는 조금 덜 잘해도 괜찮아지고, 조금 덜 미안해도 괜찮아진다.

그리고 알게 된다. 때때로 사람은, 누가 나를 받아주는가에 따라 내가 나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도 달라진다는 걸 말이다. 이건 어떤 상담기법도, 약도, 진단명도 설명하지 못하는 종류의 회복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여전히 깍두기다. 하지만 그 자리에 나를 불러주는 사람들이 있다. 그걸 안다는 것만으로도 다시금 내가 축구화를 신을 용기가 생긴다.


혹시 요즘 자꾸 민폐 같고, 어딘가에 있는 게 괜히 눈치 보일 때가 있다면,

어쩌면 용기가 아니라, 그런 자리가 필요한 때인지도 모른다.


잘하지 않아도 함께 있어도 되는 자리.

실수해도 계속 불러주는 사람들.

그런 곳에서 사람은 조금씩 살아나는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모든 걸 혼자서 해결해내야만 하는 건 아니다.

누구나 한두 번쯤은 깍두기처럼 서 있는 시간이 있다.

그리고 나는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고 싶다.

잘하든 못하든 그냥 함께 있어주는 사람.

깍두기여도 괜찮다고 느끼게 해주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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