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들 사이에서만 전해지는 묘한 금기가 하나 있다.
누구도, 절대로, 진료 중에 해서는 안 된다는 말.
“오늘은 좀 여유로운데?”
(자매품인 “오늘은 편하다.” “오늘은 환자가 적다.” 전부 포함이다.)
해리포터 세계에서 ‘그분(볼드모트)’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면 저주가 덮치는 것처럼, 이 말도 그렇다. 입에 올리는 순간, 환자가 갑자기 몰려들거나 설명할 수 없는 사고가 생긴다. 평온하던 하루가 순식간에 소란으로 바뀌는 것이다.
내 주변에는 이 저주를 꿋꿋하게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동료들이 있다. 내가 사랑하는 한 치과의사 형은 환자가 없으면 일부러 게임에 접속한다고 한다. “이러다 환자 오겠지 뭐.” 하며 자기합리화처럼 말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때마다 진짜 환자가 나타난단다. 마치 밖에서 누가 대기하다가 신호라도 받은 것처럼. 여러 사람들의 증언들을 토대로 생각해 보면, 이 금기는 단순한 우연이라기보다는, 어쩌면 묘한 질서 같은 것이다.
그러니까, 병원에서 “여유롭다”는 말은 절대 하면 안 된다. 말하는 순간부터 모든 평화가 무너진다.
그날도 그랬다.
전날 무리한 스케줄 탓인지 아침부터 컨디션이 살짝 가라앉아 있었다. 다행히 몇몇 환자분이 예약을 취소하면서 진료 일정이 조금 여유로워졌다.
‘오늘은 순탄하게 지나가겠네.’
그 생각에서 멈췄어야 했다.
점심 무렵, 진료실 한켠에 앉아 조용히 차를 마셨다. 햇살이 들고, 밖에 소음도 울리지 않는 보기 드문 고요. 그때 무심결에 혼잣말이 튀어나왔다.
“오늘은 좀 여유롭군…”
순간, 등줄기를 타고 뭔가 서늘하게 스쳤다. 아차 싶었지만 이미 늦었다. 찻잔이 휘청이며 책상 위에서 넘어졌다. 바닥은 금세 커피로 흥건해졌고, 나는 다급히 닦으려 몸을 숙였다…
그리고 그 순간—
손바닥이 진료실 책상 위의 비상벨을 눌러버리고 말았다.
“삐용 삐용 삐용——”
평소엔 조용하던 병원 전체에 경보음이 울려 퍼졌다.
식사 중이던 직원들이 뛰어나왔고, 당황한 나는 더듬거리며 말했다.
“아... 그게… 제가 실수로... 눌렀나 봐요...”
얼굴이 금세 달아올랐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비상벨은 경찰서와도 연결되어 있었다.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했지만, 혹시 몰라 직접 확인하겠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얼마 뒤, 경찰 두 분이 진료실을 찾았다. 나는 연거푸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다행히 별일 없이 마무리되었지만, 이후로 직원들이 나를 바라보는 눈빛에는 살짝 미묘한 변화가 있었다. ‘선생님’에서 ‘어쩌다 사고치는 분’ 쪽으로…
결국 비상벨은 직원분들에게 테이프로 덕지덕지 감겨, “다시는 실수로는 쉽게 눌리지 않게” 처리되었다.
내 마음속엔 묘한 억울함이 남았다. 엄밀히 말하면, 이건 내 실수라기 보다는 의료인에게 내려진 오래된 저주의 발현이었는데...
그날 저녁, 진료실 불을 끄고 집에 돌아오는 길. 문득 병원에 울려 퍼졌던 사이렌 소리가 떠올랐다.
내가 잘못 누른 벨 하나에, 병원 전체가 멈추고, 경찰까지 달려오고, 모두가 내 안녕을 걱정해줬다.
나란 남자... 무언가 소중하게 보호받는 남자가 된 기분이다.
그렇다... 모두에게 보호받고 케어 받는 남자...
그게 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