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엔 의사와 ‘찰떡’인 환자들이 모인다

by Woodfire

병원엔 의사와 ‘찰떡’인 환자들이 모인다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사람들이 정신과 의사들에게 갖는 스테레오타입이 분명하게 느껴진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정신과 의사들은 공감 잘해줄 것 같아.”
“왠지 눈빛만 봐도 사람의 마음을 다 읽을 것 같아.”
“진지하고 말수 적고, 감정을 잘 안 드러낼 것 같아.”



그런데 정신과 의사라고 해서 다 똑같지는 않다. 이 직업에는 참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하얀 가운을 입고 비슷해 보일지 몰라도, 그 안의 분위기와 기질은 모두 다르다.



어떤 선생님은 시크하다. 말수가 적고, 표정 변화도 거의 없다.
말을 조용히 꺼내면 그걸 그대로 받아 적고, 가끔 “그랬군요.” 한 마디를 덧붙인다.
그런데 이상하게 편안하다. 그 침묵 속에서 환자들은 천천히, 스스로 말을 꺼낸다.
마치 우물에서 물을 퍼올리듯, 깊고 묵직하게.



또 어떤 선생님은 리액션이 크다.

“그땐 진짜 너무 속상했겠네요~ 그죠? 으이구~ 정말 너무하네~”

말 한 마디에 환하게 웃으며 공감하고, 감정을 아낌없이 드러낸다.
그래서 환자들은 말한다.
“선생님이랑 얘기하면 그냥 친구랑 수다 떨다 가는 기분이에요.”



내 생각에 정신과 의사들에겐 각자 지닌 분명한 ‘결’이 있다.
차분한 결, 따뜻한 결, 유쾌한 결, 그리고 의외로 엄격한 결까지.
그리고 신기하게도, 환자들도 그 결에 맞는 사람들끼리 어느새 한 진료실로 모인다.



나에게도 그런 ‘찰떡’처럼 잘 맞는 환자분들이 있다.
내 진료실에는 유독 이런 분들이 많다.



“죄송해요”라며 되려 내가 힘들까봐 걱정해주는 분

약간 어리바리하거나, 예약 시간에 늘 헐레벌떡 오시는 분

눈치를 보며 진심을 조심스레 꺼내려 애쓰는 분

자신의 말을 곧바로 “근데 괜찮아요”라며 눙치는 분



이따금 생각한다.
혹시 이분들이 내 스타일에 맞춰 오신 걸까?

아니면 내가 그런 분들을 더 잘 끌어안고 있어서일까?



진료가 끝난 뒤 돌아보면, 이분들과 나 사이에는 묘한 닮음이 있다.

사실 나도 어리바리한 구석이 있다. 일정을 빠듯하게 잡아놓고는 매번 헐레벌떡 전철을 타고,
누가 기분이 안 좋아 보이면 하루 종일 마음이 쓰인다.
‘내가 실수한 건 아닐까?’ ‘그 말이 상처가 됐던 건 아닐까?’
괜히 혼자 반성회 열고, 머릿속을 몇 번이고 되감는다.



그래서일까. 그런 분들을 보면 그냥 지나치기가 어렵다.
그 마음속에 품고 있는 조심스러움이나 미안함이 어쩐지 내 안의 익숙한 감정들과 손을 잡는다.
그럴 땐 왠지 더 손을 건내고 싶어진다. ‘괜찮아요, 그럴 수 있어요.’ 하고 따뜻하게 말해주고 싶어진다.



아마도 의사와 환자 사이에도 궁합이란 게 있어서, 어떤 사람이 어떤 사람을 만나면 말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고 편안한 흐름이 생기는 것 같다.
‘아, 이분과 나는 잘 맞는구나.’

서로 달라도 괜찮은, 마치 박명수와 정준하 같은 그런 조합처럼.



그래서 나는 생각한다.
내가 만나는 환자분들은, 어쩌면 내가 살아오며 품어온 마음의 조각들인지도 모른다.

진료실은 때로 하나의 거울 같다.
한 사람의 마음이 또 다른 사람의 모습에 비춰지고,

그 연결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조금씩 더 잘 알게 된다.



어떤 환자분은 의사 안에서 자신을 발견한다.
어떤 의사는 환자 안에서 자신의 과거를 본다.
그래서 나는 이 관계가 단지 치료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조금 더 사람이 되는, 그런 과정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환자분들도 가끔 이렇게 생각해 보셨으면 좋겠다.
“이 의사 선생님이 편한 이유가, 어쩌면 나와 조금 닮은 사람이기 때문일지도 몰라.”

그렇게 의사의 모습 안에서 조용히 나 자신을 발견하는 순간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진료실, 생각보다 꽤 괜찮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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