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못 견디는 때가 있다.

by Woodfire

가끔은 못 견디는 때가 있다.



“선생님, 제 친구는 한 번도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대요. 너무 충격적이었어요. 전 자살하려는 건 아니지만, 진짜로… 그냥 살기 힘들어서 죽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하거든요. 제가 이상한 걸까요?”

진료실에서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나는 잠깐 멈칫하게 된다. 내가 놀라는 건, 그 질문 속의 마음이 낯설지 않아서다. 사실 나도 힘든 날엔 그런 생각이 스쳐갈 때가 있다. ‘그냥 다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



이런 생각을 나는 누구나 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런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오히려 내가 충격을 받았다. 내가 듣기엔… 거짓말처럼 들리기도 했다.



삶이 고통스러울 때, 감정이 과부하 상태에 빠질 때, 우리 뇌는 일종의 비상 탈출구를 마련해 둔 것처럼 “그냥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을 꺼내놓곤 한다. 그래서 나는 그런 생각이 때때로 내게 스쳐가는 걸 대단한 문제로 여기지 않았는데, 어떤 환자들은 그 말 한마디로 '너는 이상한 사람'이 되었다고 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나도 문득 헷갈려진다.
나는 그럼 멘털이 약한 사람인 걸까?
나는, 정말 괜찮은 상태인 걸까?



내가 나를 견디기 힘든 날이 있다.
다른 사람의 문제에 지칠 때도 있고, 나 자신의 부족함이 나를 괴롭히는 날도 있다.
그럴 때면, 그 모든 걸 품고 사는 나라는 사람이 너무 버거워진다.



예전엔 그런 날이면 우울함 속에 나를 가둬두었다.
우울한 노래를 들으며 더 깊이 빠져들었고, 머릿속에선 자꾸만 오래전 일이 떠올랐다.
정신과 실습을 돌던 학부생 때, 학생들에게 자신의 일대기를 제출하라는 과제를 주시는 한 교수님이 있었다. 다양한 활동을 하기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적어 제출한 내 글을 단번에 읽은 교수님은 이렇게 말했다.


“넌 도전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서 애정 결핍이 있는 아이야.”


30분 채도 함께 보낸 시간이 없는 사람이 내게 툭 뱉은 그 말 한마디. 그 단 한 번의 만남이, 이상하게도 지금까지 내 안에 상처로 남아 있다.



그래서일까. 마음이 가라앉는 날이면 자꾸 그 말이 떠오른다.

‘나는 결핍이 있는 사람인가?’
‘나는 불행한 쪽에 속한 사람인가?’

그런 생각들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다행히 요즘은, 그럴 때마다 이런 마음에 휩쓸려 가기보다는 나만의 작은 구조 신호를 보내고 있다.
친구들에게 말한다.

“도와줘. 나 오늘 좀 많이 가라앉았어.”

그러면 소중하게도, 누군가는 조용히 내 옆에 와 준다.

그냥 같이 밥을 먹고, 아무 말 없이 드라이브를 가기도 한다.

별다른 해결책이 없어도, 그런 순간이 나를 다시 끌어올려준다.



나도 못 견디는 날이 있다.
정신과 의사가 되었다고 해서 그런 날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더 또렷하게, 그런 감정들이 보일 때도 있다.



사람 때문에 무너지는 날도 있지만, 결국 나를 다시 붙잡아주는 것도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어떤 정신과적인 치료 기법보다 사람이 중요하다고 믿는다.
사람, 그리고 관계는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말이다.



AI가 정신과 의사를 대신할 수 있다고 말하는 시대이다.
그 말이 어쩌면 맞을지도 모른다. 나도 GPT와 대화를 나누다 보면 깜짝 놀란다.
앞으로는 얼마나 발전할지 상상하다 보면,

정신과 의사는 이제 정말 약만 처방하겠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내 직업이 정말 없어지는 것은 아닌지 소름이 돋기도 하다.


하지만 아무 말 없이 혼자 가라앉아 있는 사람을,
그 마음 깊은 곳에서 꺼내줄 수 있는 건 결국—사람이지 않을까 한다.
그저 옆에 있어주는, 따뜻한 사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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