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지 않은 나를 꺼내놓을 때

by Woodfire

괜찮지 않은 나를 꺼내놓을 때



진료실에서 자주 듣는 말이 있다.
“선생님, 전 그냥... 제 자신이 너무 싫어요. 이렇게밖에 못 사는 제가 진짜 한심하고요.”



이런 말을 들을 때, 때때로 나도 쉽게 대답하지 못하고, 한참 말을 고르게 된다.
왜냐하면 그 마음이 낯설지 않기 때문이다.
나 역시 자주 마주하게 되는 마음이기도 하다.



나도 한동안은 그렇게 살았다.
매일 뭔가에 쫓기듯, 조금 더 나은 내가 되지 않으면 안 될 것처럼.
‘지금 이대로는 안 된다’는 불안에 초조해하며 끊임없이 할 일을 찾고 또 찾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그 초조함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고,
크게 이룬 일에도 왠지 모를 공허함이 남았다.
그러다 문득, 내가 그렇게 애써 앞으로 나아가려 했던 이유가 정말 '앞'을 향한 것이 정말 맞는지,

혹시 '지금의 나'로부터 도망치고 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속에서 허우적대는 사람은 수영을 배우려 하지 않는다.
일단 살아야 하니까.
그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건 수영이 아니라, 숨이다.
숨부터 쉬어야 한다.
그리고 발을 딛고 쉴 수 있는 땅이 있어야 한다.

진료실에서도 마찬가지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라는 말은, “어떻게든 이 물에서 살아남고 싶어요”라는 말일지도 모른다.
수영을 배우겠다와 같은 성장의 욕망이 아닌, 더 절박한 마음이 숨겨져 있을 때가 많다.

“지금 이 모습으로는 도저히 살아낼 수 없어요. 그래서 어떻게든 바뀌고 싶어요.”

그 고백 속엔 오래된 상처의 흔적이 스며 있다.
조금이라도 다르면 혼이 나고, 눈치를 보지 않으면 다칠 것 같았던 시간들.
있는 그대로의 나로는 사랑받을 수 없다는 불안.



그래서 우리는 점점 진짜 자신을 숨기게 된다.
실망시키지 않는 사람, 실수하지 않는 사람,
누군가에게 사랑받기 좋은 사람으로 살아가려 애쓰며 말이다.



나도 그랬다.
‘착한 아들’, ‘멋진 어른’, ‘괜찮은 의사’가 되려 애쓰면서,
점점 내 마음은 안쪽으로 밀려났다.
무엇이 좋은 지도, 무엇이 싫은지도 헷갈리고
감정이 말라버린 장작처럼 느껴지던 시절이 있었다.



성장은 때로 아주 교묘하게, 자기혐오의 옷을 입은채로 다가온다.
그럴 때 우리는 '열심히 살고 있다'라고 착각한다.
하지만 어쩌면 그건, 있는 그대로의 나로부터 도망치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요즘의 나도 종종 그 경계에서 헤맨다.
괜찮은 의사, 괜찮은 어른, 괜찮은 사람처럼 보이고 싶은 마음.
그 마음이 내게 속삭인다.
“지금 모습으로는 부족해. 더 나아져야 해.”



그런데 요즘은 그럴 때마다 예전처럼 무조건 앞으로 달려 나가진 않는다.
대신, 이 마음을 누군가에게 털어놓아 본다.
“나 사실은 진짜 별로인 의사인 것 같아.”
“이런 생각이 드는데, 나 좀 이상한 걸까?”



고맙게도 내 주변에는 그런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사람들이 있다.
솔직한 나를, 서툰 나를 보여줘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사람들.
그 사람들 덕분에 알게 됐다.
나를 드러내는 일이 꼭 약점을 들키는 일이 아니라는 걸.
솔직한 내 마음과 모습을 보여주는 용기야말로,
진짜 나로 살아가기 위한 첫걸음이 될 수 있다는 걸.



그리고 나는 생각한다.
누군가가 자기 자신을 두려워하고 있을 때,
그를 있는 그대로 바라 봐주는 사람이 되어주는 일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그게 진료실 안이든, 일상의 관계든 말이다.



누구나 마음속 어딘가에
물속에서 허우적대던 시절의 자신을 품고 산다.
그 모습이 부끄러워 숨기고 싶어질 때가 있지만,
오히려 그 마음을 꺼내 보이며 말할 수 있을 때—
그리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질 때
이 순간들은 어떤 치료보다 더 큰 위로가 된다.



우리는 항상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만 하는 건 아니다.
때로는 더 나다운, 더 나와 가까운 사람이 되는 길을 걸어야 할 때도 있다.
그리고 그 길 끝에는, 조금 더 편안한 내가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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