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 앞에서 자신의 잘못이나 단점을 솔직하게 털어놓아 본 적 있으신가요?
누군가는 그렇게 물으면 “그럼요, 저는 솔직한 편이에요” 하고 대답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 일만은 아닙니다. 마음속에 오래 묵힌 이야기일수록 더더욱 그렇습니다. 말이라는 건 참 묘해서, 너무 쉽게 꺼내면 가벼워 보이고, 너무 아끼면 혼자 무거워져 다시 꺼내기 어려워집니다.
특히 가까운 사람 앞에서는 더 조심스러워집니다. 내가 털어놓은 말 한마디에 그 사람이 나를 다르게 보기라도 하면 어쩌지, 관계가 어색해지면 어쩌지—그런 생각들이 먼저 앞서곤 하죠. 아무렇지 않은 척 툭 내뱉지만, 사실은 머릿속으로 수십 번을 연습하고 조심스럽게 꺼낸 말일지도 모릅니다.
정신과 진료실에서는 어떨까요? 겉으로 보기엔 속마음을 털어놓기 딱 좋은 공간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정신과 의사라면 뭐든 잘 들어주겠지” 하는 기대도 있고요. 하지만 진료실도 결국, 사람과 사람이 마주 앉는 자리입니다. 상대가 의사든 친구든, 내 마음을 내보이는 일은 언제나 조심스럽고, 용기가 필요한 일입니다.
그래서 진료 초반에는 어색함이 흐르기도 하고, 증상에 대한 이야기만 오가며 대화가 다소 피상적으로 이루어지기도 합니다. “잠은 좀 주무세요?”, “머리가 멍하지는 않나요?” 같은 질문들로 한참을 빙빙 돌지요. 그러다 어느 날, 아주 조심스럽게—혹은 무심한 척 툭—말이 나옵니다.
“사실 저... 좀 이상한 생각이 들었어요.”
“예전에… 그런 일이 있었는데요.”
그 순간은 마치 오랫동안 굳게 닫혀 있던 마음의 서랍 하나가 열리는 느낌입니다.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던, 나만 알고 있던 이야기가 조심스럽게 바깥으로 나와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는 첫 순간이죠.
그럴 때 저는 종종 한 발짝 물러섭니다. 그 장면 앞에서 제가 할 일은 무언가 말하는 것보다, 그 순간을 잘 지켜보는 일이라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마치 단 한 사람만 입장 가능한 무대에서, 배우가 떨리는 첫 대사를 꺼내는 걸 바라보는 관객처럼요.
망설이는 눈빛, 떨리는 손끝, 붉게 물든 눈시울—겉으로는 위태로워 보일 수도 있지만, 그 아래엔 “나는 회복하고 싶어요”라는 단단한 마음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렇게 조심스럽게 꺼내진 말들은, 화려한 결심은 아니지만 무엇보다도 단단하고 조용한 용기입니다. 다짐은 작을 수 있어도 그 시작점은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그것은 스스로를 바꾸고 싶다는 신호이자, 나를 다시 돌보고 싶다는 선언이기도 하지요.
사실 저도, 그런 마음을 꺼낸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정확히는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저 역시 누군가 앞에서 내 민낯을 고백하는 일이 어렵고 부끄럽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진료실에서 그런 이야기를 듣게 될 때마다, 저는 오히려 존경심이 듭니다. 부끄럽고 두려운 마음을 무릅쓰고, 기꺼이 두려운 것들을 드러내는 그 용기 앞에서요.
제가 운동하는 때를 생각해 봅니다. 헬스장에서 기구를 잘못 써서 낑낑대면 괜히 주변 눈치가 보이고, 풋살 중 헛발질 한 번에도 민망해 소리를 지르게 됩니다. 그건 고작 사소한 몸의 일이지만, 마음의 일이라면 그보다 더한 눈치와 두려움이 따르겠지요. “그냥요"라던지, "별거 아니에요”라는 말속에는 얼마나 많은 눈치와 망설임, 혹은 눈물이 숨어 있을까요.
누군가에겐 사소해 보일 수 있는 한 마디가, 어떤 이에게는 몇 년을 돌아서야 겨우 꺼낼 수 있었던 말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저는 늘 환자분들이 저에게 보여주는 용기의 무대를 소중히 지켜보려 합니다. 때로는 조용한 박수를, 때로는 말 없는 응원을 보내며 말이죠. 그리고 진료실에서, 혹은 일상에서 마주하게 될 누군가의 조심스러운 고백 앞에서 이렇게 말해드리고 싶습니다.
“지금 여기까지 와주신 것만으로도, 이미 대단한 용기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혹시 당신도 누군가의 조심스러운 속내를 듣게 된다면, 기억해 주세요.
당신 또한 그 용기의 드라마를 지켜보는 단 하나뿐인 소중한 관객이자, 조용한 증인이라는 것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