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

by Woodfire

정신과 진료실에서는, 사람들이 경계가 무너져 힘들어하는 순간들을 자주 마주하곤 한다.


회사에서 맡은 역할과 자신의 존재가 분리되지 않아 무너지는 사람이 있다.

“직무에서 조그만 실수를 해도 제가 쓸모없는 사람이 되는 것 같아요.”


타인의 기대와 요구가 너무 쉽게 자신의 삶 안으로 들어와, 거절하지 못한 채 닳아가는 사람도 있다.

“저도 너무 힘든데, 상처받을까 봐 거절을 못하겠어요.”


관계에서, 직장에서, 가족 안에서— 나라는 경계가 강제로 허물어질 때, 그 과정은 마음에 여러 상처를 남긴다.


경계가 무너지면 자신도 무너진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경계가 약해진 사람일수록 경계의 중요성을 잘 느끼지 못한다.

그저 “내가 예민한가 보다”, “내가 부족한가 보다”라고 생각하며 버틴다.

그러다 어느 순간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어지면,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온다.


사람들은 종종 나에게 묻는다.

“우울한 이야기 매일 들으면 안 힘드세요?”

정신과 의사라면 당연히 가장 힘든 부분일 거라고들 생각한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우울한 이야기가 가장 힘든 건 아니다.

이상하게도 내가 더 자주 힘든 순간은, 환자와의 경계를 지켜야 할 때다.


진료를 하다 보면 마음이 쓰이는 순간들이 있다.

가령 정말로 모든 관계에서 밀려나 혼자 남게 된 사람을 보면, 나라도 사회에서 같은 편이 되어주고 싶어진다.

어떤 환자분은 너무 멋진 작업을 하고 있어서 “이건 꼭 더 많은 사람이 봐야 한다”라고 진심으로 느낄 때도 있다.

그래서 그 작업을 진료실 밖으로 구경하러 가고 싶고, 주변에 소개해주고 싶고, 직접 응원해주고 싶어진다.


이 외에도 여러 순간들 속에서, 내 안의 수많은 경계는 흔들린다.

의사 이전에 한 사람으로서 드는 자연스러운 마음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선을 넘지 않는다.


나에게는 좋은 마음과 선의일지 몰라도, 환자에게는 전혀 다른 의미일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건넨 응원은 관계의 혼란이 될 수 있고,

내가 보여준 호의는 치료적 관계를 흐리는 신호가 될 수 있다.

행여나 환자가 나를 ‘의사’가 아니라 그것이 긍정적이던 부정적이던 ‘다른 의미를 지닌 존재’로 느끼는 순간,

치료는 다른 길로 새어 버린다.


진료실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언제나 환자다.

내 감정이 아니다.

의사의 선한 의도도 아니다.

그저, 환자가 자기 삶의 주인이 되도록 돕는 것—그것 하나다.

그래서 나는, 마음이 가도 애써 선을 지킨다.

함께 느끼되, 그 감정이 진료실 밖으로 흘러가지 않도록 한다.


역설적으로 진료실은, 경계가 없어서가 아니라

너무 철저히 지켜야 해서 힘든 공간이 될 때가 있다.

경계를 허물면 마음은 편해질지 모른다.

하지만 치료는 무너진다.

그리고 나는 매일 그 불편함을 선택한다.


역설적이게도 진료실에서의 경계는 차갑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경계란 사람을 밀어내기 위한 것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적절한 경계는 관계를 오래 살리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거리가 되어준다.

진료실에서 지켜지는 그 거리 덕분에, 환자분들은 조금씩 자기 삶의 중심으로 돌아간다.

아마도 이것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책임 있는 모습이자 응원이지 아닐까 싶다.


행여나 경계를 넘고 싶은 마음이 들 때면,

나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한다.

“아, 맞다! 나 진료 중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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