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야 사실은 금쪽이.

by Woodfire


나는야 사실은 금쪽이.



주변에서 듣는 말 가운데 은근히 섭섭한 것들이 있다.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너 같이 인생도 오래 살지 않은 애가 무슨 사람 상담을 하냐”는 식으로 자질을 의심받을 때도 그렇지만, 더 서운한 건 “정신과 의사가 멘탈이 그래서야 쓰겠냐”는 말이다.



그냥 솔직히 내 기분이나 일상의 허전함을 얘기했을 뿐인데, 농담이 아니라 충고처럼 돌아올 때가 있다. 요즘 일상이 무료하다고 했더니 “정신과 의사라는 사람이 멘탈이 그러면 어떡하냐”는 반응을 종 종 듣기도 한다. 나도 똑같은 사람인데… 싶은 마음이 들면서 은근히 서운하다. (정신과 의사라면 대인배처럼 넘어가야 할지 모르지만… 솔직히, 친하지 않은 사람에게서 그런 말을 들으면 잘 못 넘긴다.)




사실 나는 내 마음을 잘 못 다루는 순간들이 많다.



식사 중 누군가 “이따가 할 말이 있다”고 툭 던지고 지나가면, 그때부터는 맛을 못 느낀다. 혹은 아는 사람의 부재중 전화가 찍혀 있는데 답이 없으면, 숟가락질이 급해지면서 식사를 정말 1분 만에 먹는다.



상급자가 용건은 말하지 않은 채 부를 때도 비슷하다. 머릿속에서 닥터 스트레인지처럼 수십 가지 시나리오가 굴러간다. 누가 보면 평생 죄를 짓고 산 사람 같다. 전공의 때 특히 그랬다.



다른 사람 차를 탈 때도 마음이 분주하다. 차선 변경을 놓치지 않을까, 길을 잘못 들지 않을까, 옆에서 내비게이션을 같이 확인한다. 차라리 내가 직접 운전하는 편이 더 편하다.




아마 내가 ‘금쪽상담소’를 찍는다면 오은영 선생님보다는 금쪽이 역할이 더 어울릴 것이다. 솔직히, 상담을 하는 쪽이 아니라 받는 쪽이 더 잘 어울리는 날도 많다.



예전에는 정신과 의사라는 직업 뒤에 숨은 ‘어설픈 인간미’를 들키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다르다. 나도 흔들리고, 불안하고, 때론 별것 아닌 일에도 호들갑을 떨지만—그래서 오히려 환자분들의 마음을 더 잘 이해하게 된다.


사람은 누구나 마음을 완벽히 다루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그 불완전함 위에 다리를 놓고 서로에게 관심과 사랑을 준다.


나 역시 때때로 금쪽이 같은 하루, 아니 어쩌면 강형욱 선생님의 훈계를 필요로 하는 엉망진창의 하루를 보낸다. 그래도 그 속에서 누군가와 웃으며 “나도 그래요”라고 나눌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히 따뜻하고 유쾌한 하루다. 그리고 이러한 날도 있으니 나도 환자분들에게 공감하고 애정을 쏟고 돕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한다.


가끔은 스스로에게 묻는다. 정신과 의사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늘 평정심을 잃지 않고 냉철히 분석하는 전문가일까, 아니면 흔들리고 실수하면서도 곁에서 함께 헤매 주는 동반자일까.


아마 답은 둘 다일 것이다. 때로는 전문적인 눈으로 길을 비추고, 또 어떤 때는 같은 자리에서 함께 묻고 기다려 주는 사람. 내가 금쪽이 같은 순간을 안고 살아가더라도, 그 모습 그대로 누군가에게 위로와 힘이 될 수 있다면—그게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인간적인 진료 아닐까.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오히려 그 불완전함이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라는 안도감을 건네니까. 결국 정신과 의사도 한 사람의 금쪽이로 살아가며, 다른 금쪽이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사람일 뿐이다.


그렇게 오늘의 금쪽이들이 모여, 내일은 조금 더 따뜻하고 조금 더 웃을 수 있기를.

(P.S. 만약 내가 만든 나만의 상담소가 있다면 이름은… “너도 나도 금쪽이”, 아니면 “야! 너두 금쪽이?” 정도일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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