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바로! 1월은 정말 잘 쉬겠다는 계획! 아무 생각 없이 건강을 생각하며 푹 쉬겠다는 계획. 그렇게 계획을 세웠고 글 쓰는 것도 잠시 쉬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머리 쓰는 것을 최소화하고 잘 먹고, 잘 자고, 운동도 하고.... 그랬는데! 그렇게 생각했는데! 다시 한번 느꼈지만 인생은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없다.
1월이 시작된 후로도 계속 아팠다. 일단 급한 일들은 아프지만 해야 하니 해놓고 나머지 시간에는 시름시름 앓았다. 머리는 멍하니 어지럽고 몸은 천근만근에 인어공주처럼 목소리를 잃었다. 인어공주는 왕자와의 잊지 못할 슬프고도 아름다운 사랑이라도 얻었지 나는 퉁퉁 부은 얼굴과 몸을 얻었다. 몸이 괜찮았으면 운동을 가거나, 무언가를 배운다거나, 어딘가로 훌쩍 떠났을 텐데. 뭐라도 하고 싶다.
그리고 느꼈다. 나는 잘 쉬는 법을 모르는 사람이구나. 무언가를 끊임없이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구나. 새로운 것을 해보고 배우는 것을 참 좋아하는구나. 몸이 아파 가만히 누워서 쉬라는 데도 쉬지 못하고 무언가를 하고 싶어 몸이 근질거리는 사람구나. 아직도 호기심과 열정이 가득하구나.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 그냥 이 상황이 속상했다. 속상해도 어쩌겠는가. 몸이 쉬라는데 쉬어야지. 체력이 정신력을 이긴 날들이었다.
12월에 타온 약도 다 먹어가고 몸은 괜찮아질 기미가 없어서 다시 병원에 갔다. 병원에서 주사를 맞고 와서 약을 먹고는 바로 기절. 땀을 뻘뻘 흘리며 자고 났더니 몸이 한결 가볍고 이제야 눈앞이 또렷이 보인다. 눈앞이 또렷이 보이고 정신도 맑아지니 더욱 몸이 근질거렸다. 저녁이라 무언가를 하기는 늦은 시간 옆에 보이는 책을 집었다. 예전에 받은 책인데 반 정도 읽다가 넣어두었던 책이다.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었지 생각하며 목차를 살펴보는데 챕터 3에 익숙한 곳이 보인다.
뮤지엄 산.
그 챕터를 읽으며 이곳에 다녀온 이야기를 내 글로 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앞으로는 조금 더 다양한 주제의 글을 천천히 욕심부리지 않고 써봐야겠다는 작은 목표가 생긴다.
뮤지엄 산은 최근에 다녀왔다. 2023년 12월 말. 방학식을 하고 난 다음날 학생들 약 20명과 체험 프로그램 인솔로 다녀왔다. 정확하게는 학교에서 인솔교사를 모집? 하는데 내가 미술관을 좋아하니 함께 가자고 말씀해 주셔서 가게 되었다. 이런 기회에 안 가보면 집순이인 내가 언제 강원도 원주까지 가서 이 미술관과 건축물을 보겠는가.
그렇게 출발한 강원도는 하얀 천이 드문드문 곳곳을 덮고 있었다. 그렇게 겨울을 물씬 느끼며 도착한 뮤지엄 산.
뮤지엄 산은 일본인 건축가인 안도 다다오가 만들었다. 빛을 이용한 건축가로 건축에 대해 배우지 않고 자신의 건축 철학을 만들어 프리츠커 상을 받은 건축가이다. 이곳에서 안도 다다오가 중요하게 생각하며 표현하고자 했던 건 자연과 건물의 조화이다. 이렇게 건물이 자연을 보는 것에 거슬리지 않게 만들고자 한 그의 노력은 곳곳에 묻어난다.
건축물로 만들어진 삼각형의 하늘 / 건물 안에서 보이는 풍경
내가 담은 사진에도 건축물을 이용하여 자연의 모습을 부각한 것이 많다. 건축물 사이에서 바라본 세모의 하늘. 마치 사람을 상장하는 삼각형을 푸름을 담은 조각으로 표현한 것 같다. 건물 안에서 밖을 바라볼 때도 마찬가지이다. 조용한 건물 안에서 건물 밖을 바라보면 이상하리만큼 시야의 방해가 없다. 4계절이 모두 구분이 가능한, 계절의 변화로 인해산이 변화되는 모습을 고스란히 전달해 준다.
빛의 변화를 이용한 건물 내부
안도 다다오는 자연의 풍경 변화에 대한 것뿐만 아니라 빛에 대한 변화도 건물에 담았다. 그래서 건물 내부를 걸으면 조명이 조금 어둡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그 어두움이 특유의 차분함을 만들어 준다. 그런 생각을 하며 고개를 들면 높은 천장에 아무런 조명이 없다는 것을 발견하고 놀란다. 안도 다다오는 건물 창의 배치를 통해 자연의 빛이 조명의 역할을 하게끔 만들었다. 밤눈이 어두운 나 같은 사람은 저녁에는 돌아다니지 못할 것 같은 건물. 그러나 머무르는 시간을 빛으로 구분할 수 있는 느린 건축물임은 틀림없다.
백남준 / 김환기
건축물 안에는 미술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한쪽에는 하늘을 뜻하는 원형공간에 있는 백남준 작가님의 작품이 있다. 작품의 이름을 봐도 도저히 아직은 완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작품들. 조금 더 내공이 쌓이면 이해가 갈까. 어쩌면 영원히 이해하지 못할수도 있지만 작가님의 작품은 이해를 하지 못해도 여전히 어지럽고, 특이하고, 빠르고, 재미있다. 내가 갔던 때는 산, 선, 그리고 시라는 전시를 하고 있었다. 박고석, 김환기, 황규백 작가님의 잘 보지 못했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특이하며 귀여운 것을 좋아하는 난. 역시 많은 작품들 중 심플하고도 귀엽고 미묘한 이상함이 묻어나는 달항아리가 가장 좋았다.
다양한 조형물
안도 다다오 건축물 밖에도 여러 예술적인 작품들이 많다. 사실 이곳이 유명하게 된 것에는 안도 다다오의 명성도 있지만 드라마에 나온 장면의 영향이 크다. 드라마를 잘 보지 않는 나는 그 장면을 모르지만 같이 온 사람들은 모두 큰 조형물을 보고 드라마를 떠올렸다고 했다. 아이들의 눈에는 마치 떡볶이를 이어 붙인 것 같다는 조형물의 사진이 없는 건. 조형물 아래 브이하며 웃고 있는 내가 있어서 차마 올릴 수 없었다. 그 조형물은 검색으로도 쉽게 찾을 수 있으니 관심이 있다면 찾아보기를 바란다.
건축물 밖에 있던 조형물 중 내 시선을 사로잡은 건 청춘이라는 초록의 사과. 내가 좋아하는 아오리 사과가 떠오르며 먹을 것으로 어떤 것들을 기억하는 먹는 것에 진심인 나의 삶을 생각하게 된다. 작가가 생각한 청춘의 맛은 약간은 떫고, 약간은 시큼한, 너무 달지 않은 그런 맛이었나 보다.
이곳은 바람 또한 작품이 된다. 붉은 사람 같은 조형물은 바람의 움직임에 따라 윗부분이 이동한다. 건물의 입구 쪽에 있어서 마치 주유소 풍선처럼 어서 오라는 그런 느낌이랄까.
안도 다다오의 건물 밖에는 건물을 둘러싸고 있는 얕은 물과 그 속에 검은 돌들이 깔려있다. 물에 얼음이 얼지 않을 때 오면 이 돌과 물이 거울역할을 하여 자연과 건축물이 그곳에 선명히 담긴 다고 했다. 직접 볼 수 없었지만 그것 또한 장관이겠다 싶었다.
이곳에서 가장 좋았던 시간을 꼽으라면 사진으로는 담을 수 없었던 제임스터렐관이었다. 공간의 역할이 여실히 드러났던 곳. 빛의 변주를 몸으로 느꼈던 곳이었다. 착시에 의해 빛이 변화할 때 아이들에게 "야!! 저거봐!! 바뀐다!! 신기하지 않아?"라며 연신 이야기를 했다. 그때마다 학생들은 변화 없는 톤으로 "와. 신기해요."라며 우쭈쭈 박수를 쳐주었지만. 그래도 내 눈에는 예쁘고 신기했던걸. 빛을 이용한 작가의 작품을 가장 잘 표현하기 위해 만들어진 건축물은 그곳에서 그 역할을 충분히 다하고 있었다.
자연을 생각하며 만든 건축물은 우리의 마음에 무언가를 남긴다. 그건 아마도 바쁘게 사느라 지금의 풍경에 길들여져 자연을 보지 못하는 우리에게 쉼이라는 것을 주기 때문인 것 같다. 자연을 생각하는 삶. 가끔은 잠깐 멈추고 스스로 쉼을 주는 것도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금 느꼈던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