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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란콩 Apr 13. 2024

그러니까 합법적인 알바

제22대 국회의원 선거가 다가왔다. 2024년 4월 10일 수요일.

그리고 그 전주에 단체 메신저가 울렸다.


"2024년 4월 10일 선거투표사무원을 원하시는 선생님이 계시다면 회신 주세요."


메신저를 보자마자 하고 싶다!!! 해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주저 없이 바로 회신을 했다.


"제가 신정해도 될까요?"


답은 yes!!!

그렇게 합법적인 일일알바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당일 아침 새벽 4시에 눈을 떴다. 5시까지 초등학교 체육관으로 가야 했기에 4시에 일어나서 준비를 서둘렀다. 투표하러 갔을 때 그곳에 계시는 선생님들께서 왜 그렇게 피곤하고 초췌해 보였는지 알 수 있었다. 오래 앉아 있어야 하니 편한 옷과 안경은 필수!!



깜깜한 새벽 도착한 학교 체육관. 내게 업무가 주어졌다. 주어진 업무는 투표번호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신분증을 보고 번호를 찾아주는 일이었다. 거기다 안내서비스까지 덤!!



투표사무원을 하면서 느꼈던 건. 생각보다 사람들이 활자를 읽지 않는다는 것. 투표번호와 투표소가 적힌 종이가 집마다 배달되는데. 다른 투표소를 찾아오시거나 투표번호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내가 투표사무원으로 있었던 동네는 어르신들이 많은 곳이라 대부분 아침시간에 등산화를 신고 오셨다. 그리고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사전투표를 했다는 것.



물론 올해 생일이 지난 고3인 학생들에게도 투표권이 나온다. 혹여나 투표 당일날 학생들이 놀랄까 봐 미리 언질을 줬다.

"투표하러 오면 선생님이 알바하고 있을 수도 있어. 놀라지 마."



투표당일 투표권이 있는 고 3 학생들이 투표하러 왔다. 옆에 계시던 공무원 선생님들께서 저 아이들이 고3이냐고 놀라시며 물었다. 사복을 입혀놓으면 덩치들이 커서 성인으로 보이는 아이들. 그런데 하는 짓은 영락없는 덩치 큰 초딩이다. 아이들을 대하는 모습을 보시고는 말씀하셨다.

"뭐를 그렇게 귀여워하세요?"



귀엽다. 학생들 모두 너무 귀엽다. 귀여운 것에 환장하는 나는 그래서 학생들이 좋다. 직업 만족도가 나름 높달까.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아이들과 어른들을 보는 눈빛의 온도차가 확실히 있다.

"제 친구 중에도 선생님이 있는데 학생들을 귀여워하더라고요. 선생님은 직업에 만족하세요?"

그런 물음에 주저 없이 답이 나온다.

"저는 학생들이 귀엽지 않았으면 이 일 말고 다른 일을 했을 거예요."



단호한 내 대답에 공무원 선생님께서 고게를 끄덕이신다. 그리고 생각한다. 언젠가는 학생들이 귀엽다고 느껴지지 않은 순간이 수도 있다. 그러니 지금 마음을 많이 느껴야지.

  

우리 반 학생들도 몇몇 보인다. 꾸벅 인사를 하고는 투표를 한단다. 그런데 이름이 없다.

"너네 여기 투표소 맞아?"

"투표소가 여러 개예요?"

"그래.... 다른 곳인 것 같은데?"

"근데 여기 00이 아버님 계세요."

"뭐????!!!!!!!!!!!!!!!!! 어디!!!!!!!!!!!!"


그렇다. 우리 반 학생의 학부모님이 참관인석에 계셨다. 사람들이 좀 빠지고 얼른 가서 인사를 드렸다.

"안녕하세요. 00이 아버님이시죠? 저는 00이 담임입니다."

"안녕하세요!! 저기 00이 엄마도 있는데."

"네????!!!!!!!!!!!!!!"



그리고 걸어오시는 공무원 팀장님. 학부모 설명회에도 오셔서 인사를 했는데 교사로의 나와 평소의 나를 못 알아보셨다. 그때는 표정이 안 좋았는데 오늘은 너무 잘 웃어서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고....

'당연하죠... 어머님... 교사로 있을 때는 일부러 잘 안 웃으니까요... 그래도 수업 때 학생들이랑 있으면 잘 웃는답니다...'



그렇게 학부모 상담을 마치고 자리로 돌아와 다시 일의 시작. 투표사무원으로 있는 동안 사고는 없었다. 특별히 기억나는 에피소드를 꼽으라면, 들어올 때부터 화가 많이 어르신이 계셨는데 투표용지의 마지막장을 내지 않으셨다. 꼬깃하게 구겨버린 투표용지를 가지고 문밖으로 성큼성큼 나갔다. 모두 놀라 쫓아가서 그분이 가지고 가신 구겨진 투표용지를 다시 가지고 왔다.

뭔가 그냥 내고 싶지 않으셨나 보다.



무튼 그렇게 일을 하니 퇴근시간 1시간 전쯤이 되었다. 그때부터 허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오랜 시간 가만히 앉아있다 보니 허리에 무리가 생긴다. 잠깐씩 일어서 있다가 앉았다 하며 여차저차 근무를 마쳤다.



그렇게 뒷정리까지 모두 마친 시간은 6시 30분쯤.

알바비는 최저시급 정도 되는 금액이었지만 해보고 싶었던 일을 해봤다는 것에 만족했다. 돈 버는 일은 쉬운 게 하나 없다는 말을 또다시 생각하게 된 하루였다. 그래도 뿌듯함도 있고 괜찮은 알바이니 기회가 된다면 한 번쯤 해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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