써리에서 노스밴쿠버로 이사를 한 후 새로운 보금자리의 집주인 언니와 처음으로 함께 외출을 한 날이다. 언니는 아직 밴쿠버 곳곳이 낯설 나를 위해 '오늘의 가이드'를 해주었다. 우리는 Robson St에서 만나 한국인이 하는 중국집에서 밥을 먹고 개스타운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시작하기에 앞서 Robson St을 간단히 설명하자면 다운타운에 있는 가장 큰 쇼핑거리로 다양한 브랜드 샵을 만나볼 수 있다. 또한 밴쿠버 다운타운 중 가장 한식당이 많은 길이 아닐까 한다.
랍슨 스트릿에서 개스타운까지는 걸어서 약 23분, 버스를 타면 약 15분 정도 걸린다. 우리는 밴쿠버 관광객이 되어 밴쿠버 구석구석을 훑고 다니기 위해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걸어서 이동하기로 했다.
캐나다 플레이스
Canada Place
개스타운으로 가는 길에 잠깐 캐나다 플레이스에 들렀다. 당시 내가 얼마나 밴쿠버에 무지했냐면 캐나다 플레이스도 뭔지 몰랐다. 캐나다 플레이스는 세계 유명 크루즈들이 정박하는 장소로 날씨가 좋으면 파란 하늘과 파란 바다 그리고 바다 건너편의 노스밴쿠버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장소다. 당시 미국에서 난 산불로 인해 대기질이 좋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탁 트인 경관은 속 시원한 기분을 느끼게 만들어주었다.
맑은 날의 Canada Place
이후 맑은 날의 캐나다 플레이스를 꼭 다시 한번 보고 싶어서 혼자 재방문했다. 처음 언니와 갔었을 때는 흐려서 잘 보이지 않았던 바다 건너편이 재방문했을 때는 확실하게 보였다.
아름답고 평화롭고 여유롭다, 캐나다 플레이스에 서서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사실 밴쿠버는 나에게 피겨의 퀸 김연아 선수가 금메달을 딴 곳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는데 직접 만난 밴쿠버는 사람들이 전한 말처럼 참 좋은 곳이었다.
개스타운
캐나다 플레이스를 지나 워터프런트 역을 거쳐 마침내 개스타운에 도착했다.개스타운에서는 200년 된 세계 최초의 증기 시계를 볼 수 있었다.
200년 된 세계 최초의 증기 시계
증기 시계는 시계의 주변에 모여 사진을 찍고 구경하는 관광객들로 인해 멀리서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캐나다 밴쿠버 개스타운의 증기 시계에서는 15분에 한 번 씩 증기를 내뿜으며 노래가 흘러나온다. 타이밍을 잘 맞추면 증기 시계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들을 수 있다. 혹시 타이밍을 맞추지 못하더라도 텀이 15분밖에 안 되니 조금 기다렸다가 노래를 듣는 것도 또 하나의 방법이다.
또한 개스타운은 거리 특유의 조명 때문에 낮도 아름답지만 밤이 정말 아름다운 거리다.
Gastown의 밤
처음 개스타운의 밤을 보았을 땐 어느 외국 로맨스 영화 속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었다. 상황에 맞는 로맨틱한 음악이 흘러나오고 갓 사랑에 빠진 연인들이 서로의 손을 잡고 무슨 얘기를 하든 하하호호 웃으며 길을 걷는 상상을 하게 되는 개스타운의 낭만적인 밤거리.
이스트 해이스팅스
언니와 개스타운 거리를 걷다 목이 말라 잠깐 카페에 들러 커피로 목을 축이고 다음 목적지에 대해 얘기를 나누던 때였다. 언니에게 이스트 사이드에 모여있는 노숙자 얘기를 들은 나는 개스타운에서 종종 마주친 넋이 나가 있는 사람들이 그곳에서 흘러나온 것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한 번 가볼래?"
언니의 물음에 못할 것도 없다 싶었다. 사실 어떤 곳인지 제대로 잘 알지도 못했고 언니와 함께라면 무섭지 않을 것 같았다.
"네, 가볼래요."
"그래, 내가 밴쿠버의 진짜 모습을 보여줄게!"
그렇게 우리는 겁도 없이 밴쿠버 이스트 사이드를 향해 걸었다. '그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종종 마주쳤던 넋 나간 사람들을 더 많이 볼 수 있었다. 보통은 그냥 지나가는 행인에게 별 해코지를 하진 않지만 아무래도 제정신인 경우가 드물다 보니 이들은 걸음걸이 자체가 불안 불안했다.
사실 밴쿠버는 대마초가 합법인 곳으로 길을 걷다 보면 대마초를 파는 가게를 쉽게 볼 수 있다. 또한 다운타운 길거리를 걷다 보면 이상하게 쿰쿰하고 눅눅한 풀냄새 같은 불쾌한 냄새를 맡을 수 있는데 이것은 대마초의 냄새라고 한다.
우리는 마침내 '그 거리'에 도착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길이 제법 긴데 그 길 위에 다들 정신이 나간 채로 앉아있거나 누워있었다. 길바닥에는 다 쓴 주사기들이 굴러다니고 몇몇은 소매를 걷어 자신의 팔에 무언가를 주사하고 있었다. 정말 '대충격'이었다. 당시 너무 무서워 바짝 긴장한 우리는 서로를 꼭 붙들고 걸음을 재촉해서 걸었다. 거리 전체에서 나는 찌린내가 코를 찌르고 방향감각 없이 휘청이며 걷는 사람들을 요리조리 피하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캐나다 밴쿠버에 오기 전 길을 잘못 들어 이스트 해이스팅스로 가게 된 어느 유학생의 글을 본 적이 있는데 그가 꼭 피해야 한다고 했던 그 길을 제 발로 걸어 들어올 줄이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경험은 굉장히 특별한 경험이었다. 이스트 해이스팅스의 그 '메인'거리를 걸은 사람은 현재까지 우리 주변에서 오로지 우리 둘 뿐이었다.
이후 언니는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다고 손꼽히는 도시의 번화가라는 곳에 이런 곳이 있다는 게 참 웃기고 신기하지 않냐며 어깨를 으슥했다. 나 또한 그 말에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나 글을 보고 '나도 한 번 가볼까?' 하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웬만하면 말리고 싶다. 그 거리에는 제법 많은 위험요소들이 있고 또 운이 나쁘다면 정말 위험한 일을 당할 수도 있기 때문에 호기심은 그냥 호기심으로만 두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