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담배의 향기를 기억한다
18살의 어린 나이. 쓰고 텁텁한 연기를 처음 들이마셨다. 어지럽고 멍했다. 그 느낌에 단숨에 빠져버렸다. 내 머릿속을 수시로 괴롭히며 나를 죽이지 못해 안달이던 감정들이 잠시 무뎌지는 느낌이었다.
스스로 글을 써놓고도 헛웃음이 나온다. 불평불만도 아니고 저주도 아닌 것이, 뭘 말하고자 하는 걸까. 이렇게 우중충한 문장을 누가 읽으려고는 할까. 모르겠다. 그래도 나는 바득바득 써 내려가야 마음이 편할 것 같다. 내 눈으로 본 세상이 이렇다고 소리를 질러야 발 뻗고 잠이 올 것 같다.
다시 담배 이야기를 해 볼까. 그 매캐한 것이 몸을 망가트리는 일은 알 수 없는 종류의 쾌락이었다. 자신을 해치는 것은 우울하고 비이성적인 짓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그것이 주는 해방감이란 얼마나 짜릿한 것인지. 삶의 진실은 자신을 오랜 시간 망가뜨리는 것이다. 고통과 재난, 비극과 악의가 매 순간 넘실거린다. 싸구려 감성글귀를 닥치는 대로 읽어댄다고 해서 그 사실이 바뀌진 않는다. 그게 싫었다. 결국 내가 지는 싸움을 하고 있고, 온갖 종류의 고통에 몸부림치다 죽어가게 되리라는 사실이 싫었다. 그래서 담배를 물었다.
외면하고 싶은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안다. 우리는 삶의 잔인하고 불합리한 면들을 보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낭만과 희망이라는 이름에 묻어둔 진실은 우리가 가장 약해진 틈을 타 영혼을 박살 낸다. 그래서 나는 파스텔톤 낙관론을 쓰레기통에 처박았다. 그제야 꼴도 보기 싫은 내 인생의 본질이 보이기 시작했다. 삶은 거지 같은 사건들을 수시로 던져대며 인간의 강함을 시험할 것이다. 이별. 사고. 악의. 갈등. 혐오. 우울. 통제. 상실. 애써 만든 모래성이 파도에 휩쓸려나가듯 우리의 삶을 지탱하는 어렵사리 얻은 행복들은 허무하게 부서진다. 그리고 동심을 박살 내는 생의 본모습은 무언가를 가르치고자 한다.
첫 단계는 받아들이는 것이다. 불합리와 비논리, 우연으로 인한 필연적인 불행을. 가장 어려운 것이 아닐까. 작고 소중하게 태어난 아이들은 동화를 읽고 때묻지 않은 모습으로 사랑받으며 세상에 대한 낭만과 환상을 키워간다. 누구나 그런 아이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지만, 냉정한 삶의 교훈들은 우리를 아이로 머무르게 내버려두지 않는다. 피터 팬에 그렇게들 열광할 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