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아팠구나
손에 핸드랩을 감고 주먹질을 시작한 것은 작년 여름이었다. 복싱은 내가 손을 댄 네 번째 격투기이자 마지막 격투기 종목이었다. 주먹질을 시작했던 이유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잠시 자유로워지고 싶었던 것 같다. 답답하고 많이 슬펐던 것 같다. 그러던 와중 복싱하는 한 남자의 영상을 보았다. 외롭지만 편안해 보였다. 그 길로 집 근처 복싱장을 등록하고 운동을 시작했다.
줄넘기, 쉐도우복싱, 샌드백, 근력 트레이닝, 다시 줄넘기. 숨이 차오른다. 온몸의 근육이 불에 타는 느낌. 당장에라도 죽을 것 같은 고통. 그런 몸을 억지로 움직이게 하는, 내 안에 끓어오르는, 오래된 분노와 증오. 그런 마음으로 운동을 계속했다. 심신수양은 어림도 없는 소리. 나는 폭력으로 증명하고 싶었던 것 같다. 더 이상 나는 약하지 않다고. 이만큼 자랐다고 외치며 어리숙한 내면을 가리고 싶었다. 나는 마음을 달래는 방법을 몰랐고, 그저 화내고 때려 부술 줄만 아는 미숙한 사람이었다.
군대에 있으니 심심한 마음에 다시 웹툰을 봤다. <더 복서>. 특히나 재미있게 보았던 <모기전쟁>의 작가님이 만든 복싱을 소재로 한 작품이라니. 오랜만에 추억이 떠올랐다. 땀을 흘리고 다리를 다치고 주먹이 깨져가며 운동하던 시절의 냄새가 훅 끼쳐오는 것 같았다. 단숨에 전편을 감상했다.
"복싱이란 거 참 멋있지 않나요? 서로가 온종일 상대방만을 생각하면서 살고 준비해 왔던 모든 것을 부딪치는 것. 링 위에서 두 명의 삶이 만나 서로의 생명을 이야기하는 것. 이거 사랑이랑 닮아있지 않나요? “ - 작중 J가 코치에게.
솔직히 충격받았다. 부끄러워졌다. 내가 복싱에 매달렸던 진짜 이유. 숨기고 있던 치부를 들킨 것만 같은 느낌. 그리고 다시 갤러리를 열어 인스타그램 기록용으로 찍었던 샌드백을 치는 영상들을 보았다. 과격하고 거친 움직임. 동시에 지치고 서러워하고 있었다. 마음이 아팠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나는 외롭고 힘들었구나. 그 마음을 차마 누군가에게 기대지 못해서, 주먹질로 말하고 있었구나. 나는 사랑하고 싶었구나. 나와 주먹을 맞대는 누군가를, 그리고 나를.
그때의 나에게 돌아간다면 말해주고 싶다. 내가 너의 아픔을 안다고. 내가 그 모든 것들을 품고, 어찌어찌 살아가고 있다고. 사랑받지 못한 아이야, 내가 너의 아픔을 사랑한다고. 내가 나에게 날린 주먹을 온몸으로 받으며 사랑을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