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결심 (4)

기억은 끝내 추억이 될 수 없었다

by 제이

H에게 거절을 당하고, 엠티가 끝넌 이후로도 H와 남남이 되지는 않았다. 그건 내 불안과 고통을 더 커지게 만들었다. 나에게 애매하게 구는 H와 불안정한 관계에 지쳤던 나. 나는 어느 순간부터 H에게 마음을 품는 짓을 그만두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다시 나의 삶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유도장을 찾아가 땀을 빼고 기술을 연습했고, 친구들과 만나 술자리를 가지고 맛있는 것을 먹으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여전히 채 아물지 못한 짝사랑의 흉터가 쓰렸지만, 시간이 마음을 달래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H와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우리는 악연이었고, 지겹도록 부딪혀야만 하는 운명이었다.


어느 날, 친한 동기였던 채민이와 우연히 통화를 하게 되었다. 내가 놀랐던 이유는 나는 절대로, 아무에게도 말한 적 없는 H와의 이야기를 그녀가 알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것도 사실과는 조금 다르게. 채민이는 내가 H를 일방적으로 좋아했으며, H가 부담스러워하는 와중에도 혼자 들이대다가 결국은 거절당했던 것이 아니냐고 했다. 그 이후로도 대여섯 명의 동기들에게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다. 누구에게 들었냐는 질문에 모두가 이렇게 대답했다. "H가 그러던데?“


분노와 실망에 휩싸였다. 원하지 않았던 결말이라도 H의 마음을 존중하려고 했고, 오랜 시간이 지났을 때 아름다운 첫사랑으로 기억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었다. 착각이었다. H에게 나는 그저 잠깐 어울리다 멀어지면 그만인, 유행하는 싸구려 장난감 존재였던 것이다. 그런 생각들이 머리를 헤집었다. 그래도 당사자의 말을 듣지 않고 섣불리 판단할 수는 없다. 그렇게 생각하며 H에게 전화를 걸었다.


“해야 할 말이 있는데. 근데 너가 이번에도 피하면, 앞으로 이렇게 제대로 대화할 기회는 없을 것 같네.” “••그건 협박하는 거 아니야?” 돌아오는 H의 대답에 다시 한 번 화가 치밀어올랐다. 나와의 관계를, 그 밀도있는 시간을 자기 좋을대로 소문내고 다닌 주제에. 그러면서 나와는 한 번도 제대로 대화를 해보려고 하지도 않았으면서, 나에게 협박하지 말라며 쏘아붙힐 수 있다니. 나는 그저 알겠다고 대답하며 전화를 끊고, 근처에 동기들이 모여있는 술집으로 떠났다.


조금 홀가분해졌다고 생각했다. 다시는 H와 엮일 필요 없고, 이제는 H를 찾아가지도 않으리라 결심했다. 오랜만에 활짝 웃을 수 있었다. 하지만 나조차도 모르는 사이에 그 상처는 내 안에서 증오와 공허로 바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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