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밤 (1)

나의 전쟁터

by 제이

그날 이후 나는 다시 운동에 몰입하기 시작했다. 그건 건강을 위해서라기 보다는 자기학대에 가까운 형태였다. 때마침 종강이 다가왔고, 본가로 돌아가는 대신 서울에 남기로 결정한 나는 남는 모든 시간을 운동으로 채워넣었다. 무기력한 상태로 늦게 일어나자마자 태권도 동아리 훈련을 나갔다.


치료 시기를 놓친 발목과 인대가 삐걱거렸지만 개의치 않고 뛰고 움직였다. 훈련이 끝나면 저녁 시간이 되었지만 밥을 먹을 시간은 없었다. 이온음료로 대충 배를 채우고 유도장으로 향했다. 준비운동조차 소화하기 어려웠다. 늘 웃으며 실없는 농담을 파트너와 주고받았지만 몸은 그 어느 때 보다도 고통스러웠다. 그 고통은 잠시나마 나를 온갖 상처에서 자유롭게 만들었다. 비틀거리며 집에 돌아오면 굳은살과 상처, 멍자국이 욱신거렸다.


나에게 방학기간은 기회였다. 당시 나는 사범을 준비하는 중이었다. 경찰행정학부의 유도 사범은 총사범, 상체사범, 하체사범으로 구성된다. 사범들은 교내에서 항상 보여지는 모습에 신경써야 하며 함부로 웃을 수도 없고, 후뱌들과의 사적 접촉이 일체 금지되었으며 모든 학과행사에 필수적으로 참여하여야 했다. 또한 기수가 높은 선배들과 교수님들을 응대하는 과정에서 술을 많이 마셔야 하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기수 내에서도 최고 수준의 유도 실력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힘과 속도, 기술에 대한 이해와 반응까지, 사범이 되려면 유도에 모든 것을 걸어야 했다.


타고난 재능으로 치자면 나는 쭉정이 중에서도 쓰레기였다. 작은 골격과 가벼운 체급, 재수를 견디며 망가진 몸으로는 누군가를 들고 메치는 일이 버거웠다. 유도에서는 5킬로그램 정도의 체급 차이도 치명적이다. 나는 최소 10에서 많게는 30킬로그램의 차이가 나는 이들과 기술을 연습하고 대련을 해야 했고, 당연히 신체에는 무리가 가기 시작했다. 피로골절과 미세한 골절, 염좌와 근육 파열 등 당장 치료해야 할 부상이 셀 수 없이 많았다. 그럼에도 단 한 번도 병원을 찾지 못하였다. 기브스라도 하게 되면 운동을 멈춰야 했다. 나는 정형외과를 찾는 대신 편의점에 파는 파스와 유도용 테이핑으로 부상 부위를 억지로 틀어묶었다.


무모한 짓이었지만, 나는 사범의 자리가, 그 이름값이 필요했다. 학교생활을 시작한 이후 늘 바꾸고 싶었던 경찰행정의 부조리와 폭력적인 문화들을 뒤집어엎기 위해서는 명분과 힘이 필요했다. 나는 경주마와 같이 매몰된 시야로, 단지 그 목표를 향해서 움직이고 있었다. H에게 받은 상처와 사람에 대한 실망을 치료할 시간이 필요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나는 나에게 쫒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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