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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죽, 여우, 그리고 나

2025/01/01

by Stell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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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두 시나 되어야 침대에서 기어 나오는 일상이 시작된 지 거의 두 달이 다 되었다. 런던의 겨울이 우중충 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걸 경험한다는 것도 낭만적이라 생각하고 왔지만 뭐든 실제로 겪는 건 상상과는 다른 일이다. 내가 잠드는 오전 여섯 시에서 일곱 시 사이에도, 잠에서 깨는 오후 두 시에서 세시 사이에도 눈부신 햇살은 없다. 새해를 맞이한 오늘도 역시 구겼다 폈다를 수없이 반복해 잉크가 닳아 없어진 신문지 같은 하늘과 차라리 쏟아져 퍼붓는 비가 그립도록 대기에 떠다니는 물방울로 번지듯 젖은 거리가 창밖에 던져져 있다. 동지가 막 지난 요즘 시기에 어둠은 빛이 내려앉을까 조바심을 내는 듯 오후 네시가 되면 황급히 암막을 친다.


새벽은 두들겨 맞은 개처럼 울부짖는 여우들이 공원에 나타나면 시작된다. 오늘 자정 새해를 맞이하는 폭죽이 터지는 소리에 놀라 우왕좌왕하는 여우의 모습을 드디어 보았다. 쓰레기를 많이 주워 먹어서인지 겨울옷을 입어서인지 상상했던 것보다 둥글둥글한 게 집 밖에 나가본 적 없는 뚱뚱한 집고양이 모양새인데 폭음으로부터 몸을 숨길 곳을 찾아 이리저리 뛰어다녀봐도 여의치 않아 보여 안쓰럽다. 그렇게 새벽 세시가 되어도 멈추지 않고 폭죽을 터뜨리는 얼굴을 모르는 이웃들과 패닉이 온 공원의 여우와 좁은 방의 내가 함께 새해를 맞이했다.


나의 친구들과 가족들은 세계의 여러 나라에서 각기 다른 시간에 새해를 맞았다. 유튜브의 알고리즘은 2024년의 삼재가 지나가고 운수가 대통하는 새해를 맞게 된다고 격려하는 역술인의 영상을 항공기 참사와 탄핵된 대통령의 체포에 관련된 뉴스영상들 사이에 슬쩍 끼워 넣었고 그걸 본 나는 작년보다 희망찬 한 해를 꿈꾼다. 하고 싶은 것들을 또다시 마음에 품어 슬픔을 희석하고 밤과 낮 사이의 푸른빛에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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