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2/01
집들이 핑계로 친구들을 초대해 떡국과 잡채를 만들어 설날 기분을 내고 친구들이 사 온 디저트를 먹으며 '솔로지옥' 시즌 4를 같이 보았다. 90년대부터 지금까지 여전히 미디어에 먹히는 하늘하늘 밝은 색의 원피스를 입고 청순미를 강조하는 흰 피부에 발그레한 볼화장, 긴 생머리를 한 여성들이 줄줄이 등장한다. 카메라는 스튜디오에서 영상을 보는 남성 패널들이 여성들의 미모에 빨려 들어가듯 몸을 기울이며 넋을 잃는 모습을 클로즈업한다. 내 눈에는 출연자 여성들이 모두 공장에서 찍어낸 인형들처럼 똑같아 보여 혼란스럽다. 저런 사람들을 한국 사회는 아름답다고 하는구나. 그나마 남성 출연자들은 얼굴을 분간하기가 쉬운데 여성들은 모두 큰 눈, 갸름한 턱, 도톰한 입술이 담긴 얼굴에 가슴이나 다리가 부각된 원피스를 입고 모래사장을 걷는데 부적절한 구두를 신은채 연신 긴 머리를 쓸어 넘긴다. 도저히 보기가 힘들어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조용히 딴짓을 하다가 결국 방으로 피신해 버렸다. 밤이 되어 친구들을 보내고 나서 뭔가 답답한 기분을 환기시킬 생각으로 '서브스턴스'를 보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영화를 본 뒤 나는 아주 상쾌한 기분으로 잠에 들 수 있었다.
원근감을 깊게 잡은 좌우 대칭의 붉은 배경 속 파란 의상의 강한 대비가 영화 초반부터 관객들에게 "나는 적당히 하지 않을 거야."라고 말하고 있다. 밝고 모던한 흰 조명을 받고 있는 새빨간 복도라던가 배송된 물건을 찾으러 가는 보관함의 흰 타일 속에 노란 코트를 입고 서 있는 엘리자베스의 모습 등 영화의 곳곳에서 스탠리 큐브릭의 미학이 엿보인다. 후반부의 배경음악까지 오마쥬로 가득한 영화는 의외로 그의 영화보다 명확하고 단순하다. 백인 중년 남성의 눈을 클로즈업한 신을 보고 있으면 그 맞은 편의 객체화된 여성들, '영원히 젊고, 아름답고, 늘 미소를 지어야 하는' 쇼비즈니스 세계의, 또 그런 시각에 족쇄를 찬 일반 세계의 여성들이 건너다 보인다. 인스타그램의 쇼츠에는 50대 후반이 된 김완선이 무대에서 몸을 드러내고 춤을 추는 모습을 두고 '존경스럽다', '자기 관리의 끝판왕', '나이 육십 먹고 뭐 하는 짓이냐', '흉측하다' 등 온갖 품평이 난무한다. 사람들은 사랑했던 스타들의 자연스럽게 나이가 들거나 살이 찐 모습을 용서하지 않고 비난거리로 만든다. 대상이 여성이라면 그 잣대는 더욱 엄격해진다. '서브스턴스'에서 당황스러울 정도로 노골적이게 표현된 젊은 여성의 비현실적인 신체가 왜 이 영화의 장르가 고어여야 했는지 설명한다. 군더더기가 없는 세련된 스타일로 파괴되는 요구된 세계를 보며 속이 시원하게 뚫렸다. 낭만적으로 야자수잎이 펄럭이는 할리우드에서 만들어진 선정적이고 정제된 스크린의 이미지, 그것을 제작하고 소비하는 (백인남성, 자본 중심의) 권력과 그로 인해 객관화, 대상화되어 외적인 아름다움의 노예가 되어 외롭고 불행한 여성들 모두에게 전하는 일침. 아시안, 흑인이 배제된 캐스팅도 억지로 역할 배분한 느낌이 나는 영화들에 비해 오히려 할리우드의 현실을 반영하는 것 같았다. 물론 비꼬듯 비판하는 시각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