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족, 상쾌함

by 참꽃마리

어디서 볼까? 친구가 6호선 새내역 2번 출구에서 만나자고, 거기서 기다리겠다고 했다.

비가 내린 후 하늘은 파랗고 맑은 대기가 흰구름과 함께 눈부시다.

벚나무는 벌써 노란 잎들을 하나씩 떨어뜨린다. 아, 가을인가.

처서를 지나고부터 아침저녁으로 이는 바람 끝이 모기 주둥이만큼 시원해졌다.

모처럼 교외로 나가는 날, 소풍 가는 아이처럼 들뜬 마음으로 버스에 올랐다.

처음 발걸음해보는 은평구까지 금세 간 듯하다.


뷰맛집이라는 스타벅스에서 커다란 통창을 통해 바라본 북한산의 봉우리들, 노적봉이라는 친구의 말에

나는 목포의 노적봉을 먼저 떠올린다. 몇 번을 보았던 그곳이 아직은 더 가깝다고 느끼는 이 심리적 거리가 아직도 유지되고 있음을 실감하면서.

햇살에 반짝이는 바위 봉우리를 보고 있자니 비 갠후 인왕산을 그린 정선이 스쳐 지나가기도 하고 여러 가지 상념들이 떠오른다. 내 지리산도, 더 깊은 푸름으로 품을 넓히는 지리의 산속을 생각한다.

그 깊은 골짜기 사이를 흐르는 계곡의 물소리와 포말, 투명하다 못해 옥빛으로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그곳을 그리워한다.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수없이 찾아들었던 숲과 산 길 언저리를 머릿속으로 훑는다.

저기 산 중턱에 아슬하게 걸쳐있는 암자를 발견하면서도 나는 지리산에서 가파른 계단을 올라 다다른 그곳을 떠올린다. 녹음의 바다에서 기웃거리는 조각배를 탄 듯 멀미가 나기도 했었던 그때를 선명하게 기억한다.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땀방울에 젖어보자고 거친 숨에 헐떡이며 오르진 않았을 텐데.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음료라고 친구가 주문한다. 북한산 봉우리가 앙증맞게 올려진 시원한 홍차블렌딩 시그니처라고. 친구랑 둘이서 손을 마주 잡듯! 잔을 부딪쳐도 보고.


산을 좋아하는 친구를 따라 지리산에 많이도 갔었다. 길을 잃고 헤매다 엉뚱한 곳에 텐트를 치고 잠을 자기도 하고, 생전 처음 보는 남의 텐트를 독차지하여 하룻밤 신세를 지기도 하고.

그 시절 높은 산에는 우리만의 낭만과 여유가, 배려가 있었다.

산을 오르며 젊은 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가 지리산 종주를 꿈꾸고 있다. 같이 가자며 은근하게 유혹을 하는데, 어쩔까나. 노고단, 벽소령, 연하천. 피아골, 세석평전, 장터목, 천왕봉까지 천천히 놀멍놀멍 가보자고.... 이제는 텐트는 필요 없고, 쌀이며 김치를 짊어지고 갈 일도 없을 거라며.


교외로 나가자 나의 폐포는 한껏 부풀었다. 깊은 호흡으로 신선한 공기를 맘껏 들이마신다.

그동안 숨죽이고 있던 몸의 세포들이 슬며시 눈을 뜨기 시작한다.

'여기 맘껏 날아오르고 싶은 곳이야.'

초록이, 맑은 바람이, 푸른 하늘이 그리웠던 나를 위해 계곡에 가자고 한 다정한 벗.

잠시동안 다 잊고 시원한 물에 발을 담고고 첨벙거리며 물소리를 듣는다.

해 질 녘까지 멍하니 앉아 있고 싶었건만, 친구는 돌아가는 길의 혼잡함을 걱정한다.

퇴근시간을 피해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하는 것이 아직은 익숙지 않다.

10분만 더 있다 가자, 시계를 보며 마지못해 일어선다. 하루의 소풍이 마치 한 달의 양식을 준비한 것처럼 든든하다. 그 양식이 떨어지기 전 다시 나서야지, 숲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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