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렸다. 남부지역에 집중 폭우가 내려 비 피해 소식이 심술궂게 올라오고 있다.
사람이 생명 있는 살아 있는 존재들이 더 이상 비에 휩쓸리지 않기를 바라며 한강으로 나섰다.
비 갠 후 노을이 붉게 타는 모습을 모처럼 볼 수 있을까 기대를 하고는.
뜻밖이었다. 도착한 곳에 태극기가 휘날리고 있다.
광복절 80주년을 맞아 크고 작은 태극기가 여름밤이 하늘에 펄럭인다.
노을보다 더 붉게 내 심장이 쿵쾅거린다.
천천히 노들섬의 한쪽을 걸었다. 언젠가는, 하며 가 보고 싶었던 곳 중 하나인 노들섬에 왔다.
어쩌다가 광복절 태극기가 펄럭이는 밤에 혼자.
맘먹고 버스에 올라타니 그리 먼 곳이 아니다. 이리 쉽게 오는 곳이었음을 몰랐을까.
예전에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직장을 다닐 때는 휴가조차도 이런저런 형편을 살피다 보면 미루기 십상이었다.
이제는 거리낄 게 없다. 오로지 하나 나의 몸이 허락하면 된다. 몸이 힘들어하지 않으면 되는 거다.
가야겠다는 마음만 있으면 그냥 출발하면 된다. 무엇을 망설일까. 방해될 건 하나도 없다.
마음먹기가 힘들었을까. 마음은 있으나 몸을 움직이기 귀찮았던 걸까.
그동안 적응도 필요했을 거다. 일을 그만두고 쉬고 있지만 아직 정말 쉬는 게 무엇인지 내 몸이 알아차리지 않은 것 같다. 알려줘야지, 나에게.
'그냥 걱정 없이 너 하고 싶은데로 하면 되는 게 쉬는 거야.
배고프면 먹고, 잠 오면 자도 돼. 언제라도 말이야.'
그러니까 어디든 가보고 싶으면 집을 나서면 되는 거다.
노들섬에 가는 날도 그렇게 출발했다. 아무 생각 없이, 상황이나 형편을 따지지 않고. 무작정 나섰다.
이렇게 나오니 얼마나 가벼운지, 날개를 단것처럼 금방이라도 날아오를 것만 같다.
살랑이는 바람을 따라 강가를 따라 걸었다. 낮게 깔린 잿빛 구름이 노을을 훼방했지만 서운하지 않다. 나와 상관없는 일인 듯. 빛나는 빌딩 숲 사이로 남산타워가 반짝인다. 강물도 흐른다. 푸른 풀밭에는 빈자리가 없다. 돗자리를 가지고 소풍을 나온 사람들을 부럽게 바라보며 언젠가 돗자리와 도시락을 챙겨 또 한 번 와야지 싶다. 내 지도에는 별이 빛난다. 가보고 싶은 곳에 수시로 별을 그려 넣었다. 별을 하나씩 따는 거야. 가서 보고, 먹고, 웃으며 생각하고 느끼며 감동하는 시간들이 별만큼 쌓이겠지. 그냥 이렇게 나만의 시간을 즐기고 싶다.
형편이 되는대로, 편안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