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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다강 Jun 03. 2022

지은 | 자기 검열로 만드는 삶의 나이테

팬데믹을 뚫고 만난 핀란드 외노자 ‘지은 언니’와의 인터뷰 비하인드

여성 인터뷰 프로젝트 ‘끗질’

“언니도 언니가 필요하니까”

끗질은 중장년 여성들의 목소리를 조명하는 여성 인터뷰 프로젝트다. 시즌1에서는 4050 언니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담는다. 단행본에 실린 인터뷰 전문 외에 프로젝트에 기획부터 언니들을 만나는 과정을 담은 비하인드 스토리를 릴레이 연재로 소개한다.     




모난 돌이 정 맞아요, 다강 씨.


몇 년 전,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은 회사에서 선배가 내게 말했다. 그는 이미 사내에서 모난 돌이었다. 선배는 자신과 닮은 나를 걱정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선배는 회사를 나갔다. 그 뒤로 반년을 조금 넘겼을까. 나 역시 회사의 부조리와 성차별적 분위기를 참을 수 없어 퇴사하겠다 말했고, 한 살 터울이던 남자 사수는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너 그때 나간 선배랑 똑같은 소리 한다.” 


그 말을 들으며 조직에서 사라진 여자 선배를 떠올렸다. 이 사회에서 내가, 그리고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여자들은 이렇게 조금씩 흩어지다가 결국 사라지는 걸까. 내게 ‘너는 여자 같지 않아서 좋다’는 말을 무시로 하던 상사를 떠올렸다. 그리고 나 때문에 이 조직은 앞으로 여성을 뽑지 않겠구나, 생각했다.



유럽을 동경했다.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고 사람들이 서로를 존중할 것이라는 막연한 환상 때문이었다. 



지은 언니의 브런치 소개글


브런치에 자신을 ‘핀란드 외노자’라고 적어 놓은 지은 언니의 소개말이 눈길을 끌었던 이유다. 이 언니의 삶은 내가 바라던 것에 가깝지 않을까. 그곳에서는 적어도 내가 ‘모난 돌’이 될까 봐 마음 졸이지는 않을 것 같았다.


  

지은 언니는 한국에서 나고 자랐고, 외국계 기업에서 경력을 쌓았다. 대학 시절, 유럽 기차 여행에서 우연히 만난 핀란드 남자에게 농담 삼아 한국에 한번 놀러 오라고 했는데, ‘빈말을 모르는’ 그가 곧이곧대로 듣고 한국에 찾아와 가족이 됐다. 그의 눈치 없음은 장인어른과 만났을 때 가장 시너지가 컸는데, 사위 대접한다고 불을 피우고 음식을 준비하는 장인어른을 앞에 두고 눈만 껌뻑이고 있을 때가 그랬다.


가서 조금 도와드리라고 해도 ‘도움이 필요하면 직접 말씀하시겠지’하며 느긋하게 굴어서 유교걸의 속을 태웠다. 언니는 남편의 눈치 없음이 답답했는데 이게 핀란드 사람들의 문화라는 걸 남편의 부모님이 한국에 왔을 때 어렴풋이 깨달았다. 남편만큼은 아니지만, 시가 어른들도 굳이 부탁하지 않은 일을 해주는 걸 달가워하지 않았다. 한국의 ‘눈치’가 ‘오지랖’이 되는 경험은 핀란드에서 언니가 경험할 일의 복선처럼 느껴졌다.



아무래도 눈치가 없었던 언니 남편의 에피소드. 간결한 제목에서 언니의 깊은 빡침이 느껴진다.


브런치에 올라온 언니의 일상을 훑어보고 섭외 메시지를 적어 내려갔다.



[안녕하세요. 저는 여성 인터뷰 프로젝트팀 ‘끗질’의 (말랑콩떡) 은다강입니다. 브런치를 통해 지은님의 (눈치 없는 남편과 핀란드에 사는 외노자 수기) 이야기를 접하게 되었는데, 인터뷰를 통해 최지은의 이야기를 더 많은 여성과 나누고 싶어요.]



막연한 초청이었지만 나처럼 직장에서 흩어지고, 사라져야 했던 여성들은 다른 세계의 이야기가 궁금하지 않을까. 분명 이곳과는 다를 그의 이야기에 힘을 얻고 공감하리라고 생각했다.



흔쾌히 인터뷰를 수락해준 언니 덕에 나와 희경은 난생 처음 핀란드 땅을 밟았다. 오랜만에 느끼는 공항의 분위기가 낯설고도 설렜다. 긴 비행 끝에 우린 영화 <카모메 식당>에서 나온 카모메 식당과 비슷한 외관의 카페에서 언니가 좋아하는 커피를 시켜놓고 조금 서늘한 핀란드 날씨에 연신 팔뚝을 문지르며 인터뷰를….



오랜만에 밟아보는 인천공항의 흔적_은 구글링


하고 싶었지만, 돼지 저금통까지 탈탈 털었는데도 비행기 삯에서 오백 원이 모자랐다. (야속한 인플레이션이여.) 눈물을 머금고 비대면 인터뷰를 진행할 수밖에.



브런치 소개에서 언니가 스스로 ‘외노자’라고 말할 때, 나는 언니가 유쾌한 사람인 걸 직감했다. 눈치 없는 남편의 에피소드를 말할 때도 투덜거리는 말투 속에는 애정이 듬뿍 묻어났다. 사람이 가진 고유한 기운은 그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는지 모니터 너머로도 언니의 유쾌함과 다정함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브런치 글을 통해 이미 많은 일상을 공개한 언니에게 어떤 질문을 해야 좋을까 고민하며 가져간 이야깃거리를 언니는 크게 반겨주었다. 유심히 사람을 관찰하지 않으면 나오지 않는 질문들이라며 나를 치켜 올려주기까지 했다. 역시 언니는 눈치 백단.


눈치는 남의 마음을 미루어 짐작하는 일이지만, 타인의 눈으로 자신을 비추어 보는 일이기도 하다. 이는 언니가 인터뷰에서 말한 자기 검열과도 맞닿아있다. 나는 자기 검열, 특히나 여성의 자기 검열이 자신을 옭아매는 일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언니 덕에 검열의 긍정적인 면도 보게 되었다. 더 완벽한 나를 만들기 위해 나를 돌아보는 일. 그러니까 자기 검열은 수많은 심리테스트로 검증된 아싸와 인싸 사이에서 애매한 위치에 처한 나 같은 사람들이 ‘그럴싸’라도 되기 위한 수단인 셈이다.




자기 검열과 자기 객관화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게, 참 쉽지 않은 문제죠. 인사부라고 해도 직원 데이터를 글로만 보는 거지, 그걸 가지고 어떤 사람을 안다고 하기는 어려워요. 이미 누군가의 평가를 거쳐서 객관화된 데이터를 보고 평가하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객관화는 다 피드백을 통해서 하는 것 같아요. 그 피드백이 아무에게나 받는 피드백과는 다르죠. 온라인에 글을 하나 올려도 거기에 댓글이 달리는데, 그 댓글이 전부 중요한 피드백은 아니거든요. 

피드백을 중요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사람들을 정해놓는 것도 좋아요. 그들이 나에 대해 어떤 피드백을 주는지 보고, 취할 건 취하고 버릴 건 버리면서 나를 발전시킬 자료로 활용하는 게 현명한 객관화 방법인 것 같아요. 스스로 생각할 때는 잘하는 부분도 있고 형편없는 부분도 있겠지만, 그게 다른 사람 눈을 통해 봤을 때 어떻게 보이는 지도 중요하니까요. 조직 생활에서는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가 더 객관적인 지표가 될 수 있거든요.




핀란드 산지에서 공수해 온 ‘그럴싸’가 되는 비법은 자기 안에 갇히지 않는 데 있었다. 나의 안목도 중요하지만, 가끔은 타인에게 주도권을 살짝 내어주고 내가 고장 난 나침반을 쥔 채 길을 헤매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물론 이 타인이 ‘아무나’여서는 안된다. 나의 부족한 점을 힐난하고 비웃는 사람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서 나이테 삼아 더 큰 테두리를 그릴 수 있도록 돕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럴싸’에게도 그 정도의 안목은 충분히 있다. 그리고 여차하면 지은 언니에게 물어봐도 되겠다는 뻔뻔한 마음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그럴싸’가 되기 위한 첫걸음은 다른 무엇보다 뻔뻔함인 것도 같다.



제가 20년 넘게 일하면서 일단 ‘못 먹어도 고’라는 말을 자주 쓰는데요. 어떤 일이든 일단 시작하고 나면 자기 욕심도 있고,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려고 애쓰면서 일이 늘게 되어있거든요. 사실 사람이 하는 일이니까 정말 일을 못하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나 역시 직장인이지만, 언니의 일하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새삼 일을 동경하는 마음이 생겼다. (이 문장을 다강의 사장님이 좋아합니다.)



늘 그럴싸한 직장을 원했지만, 그 전에 나는 그럴싸한 직업인이였던가. 언니의 말은 지표가 되어 나의 일을 돌아보게 한다. 이건 검열보다는 성장을 위한 나이테다. 이 인터뷰집을 내고 나면 내 나이테는 몇 개나 늘어나 있을까. 또래 여성들에게 언니의 말을 서둘러 전하고 싶다는 마음과 제대로 전하고 싶다는 욕심이 두 발을 허공에 띄웠다.



*지상 5cm에서 작성한 글입니다. (뉴턴이 이 문장을 싫어합니다.)





(지은 언니와의 인터뷰 전문은 7월 텀블벅 펀딩을 통해 출간되는 끗질 인터뷰집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인터뷰이 정보]

지은 언니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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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끗질 뉴스레터]

격주 화요일마다 끗질의 활동과 인터뷰 이야기를 담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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