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묵히 나만의 속도로 꽃을 피우는 '미령 언니'와의 인터뷰 비하인드
"언니도 언니가 필요하니까"
끗질은 중장년 여성들의 목소리를 조명하는 여성 인터뷰 프로젝트다. 시즌1에서는 4050 언니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담는다. 단행본에 실릴 인터뷰 전문 외에 프로젝트의 기획부터 언니들을 만나는 과정을 담은 비하인드 스토리를 릴레이 연재로 소개한다.
흔히 인간의 나이 50을 '지천명(知天明)'이라고들 한다. 지천명, '하늘의 뜻을 아는 나이'라. 공자가 <논어>를 쓴 춘추전국시대의 인간(대체로 전쟁에 불려다니는 남성) 평균수명은 27세였다. 잘 사는 것보다 잘 죽는 것이 중요했던 당시의 시대상을 고려했을 때, 언제 칼맞고 포맞을지 모르는 난세에 반세기나 살아남는다면 누구라도 '하늘의 뜻을 통달한 것 같은' 느낌이 들 것 같긴 하다.
세계보건기구에 의하면 오늘날 전 세계 인류의 기대수명은 71.4세라고 한다. 공자의 시대보다 3배나 긴 세월을 사는 것이다. 징하게도 오래 살아남는 현대인의 시간에서 '지천명'하는 나이는 몇 살쯤이 될까. 어디보자...한, 90살? 참고로 수명은 늘었어도 노화의 속도는 그때나 지금이나 동일하다고 한다. 다수의 연구결과에 의하면 신체 노화가 시작되는 나이는 26세. 이미 우리는 누구나 20대 중반을 넘어서면서부터 '늙는 사람'의 시간을 살아간다. 인생의 현자 타임이라고 불리는 번아웃 증후군을 가장 많이, 가장 강렬하게 경험하는 게 20대라는 사실은 그저 우연에 불과한 것일까.
또래에 비해서 너무 일찍, 빨리 살아버렸다고 느끼는 순간들이 있었다(실은 줄곧 그런 기분에 시달리며 살아왔다). 어떤 새로운 것을 접해도 대충 다 알것 같고, 여기서 나이를 더 먹은들 늘어나는 건 주름과 흰머리, 책임감 정도 말고는 없을 것 같은 느낌. 매너리즘을 깨고 싶어서 열심히 살면 살수록 이놈의 '다 알 것 같은 느낌'만 자꾸 반복되는 일상들. 하고 싶은 것, 좋아하는 것 대신 잘하는 것만 앵무새처럼 반복해 어필해야 하는 하루하루가 지겹다고 느껴질 때가 있었다.
'있었다'고 과거형으로 말하는 건 이제는 그렇게 말할 수 없게 돼 버렸기 때문이다. 끗질 활동을 시작한 뒤 만난 8명의 언니들은 나이듦에 스테레오타입이란 존재할 수 없다는, 어쩌면 조금 빤할 수도 있는 사실을 다시 곱씹게 만들어줬다. 네 번째 인터뷰이로 만난 이미령 언니가 특히 그랬다. 사는 게 다 비슷해도, 로또 당첨같은 획기적인 사건이 없어도 매일 보는 일상의 풍경과 내 삶의 가치는 얼마든지 내 의지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줬기 때문이다.
고향인 창원에서 토박이로 자라 대학을 졸업하고, 작은 건축회사 차장으로 근무하며 남편과 살고 있는 미령 언니는 '취미 부자'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취미부자와 N잡러 그 사이 어디쯤에 있는 사람이다. 언니가 가진 4~5개의 취미들은 딱히 돈을 벌기 위해 하는 것들이 아니라 직업으로 보긴 애매한데, 그렇다고 단순 취미라고만 하기에는 또 너무 진심이기 때문이다. 서예, 페인팅, 조경 디자인, 블록체인 연구와 NFT 제작, 브런치 연재까지. 접점이 따로 없는 여러 분야의 지식들을 전문 강사와 유사한 수준으로 구사한다.
특기할 점은 이 모든 취미가 전부 지천명의 나이, 그러니까 50세 이후부터 시작됐다는 것이다. 올해 58세인 언니는 60대로의 진입을 앞두고 있다. 어떻게 이렇게 많은 분야를 10년도 안되는 짧은 시간에 섭렵할 수 있었을까?
솔직히 처음엔 그 동기가 <논어>를 쓴 공자, <파우스트>를 완성한 괴테, <데미안>을 남긴 헤세처럼 '하늘의 뜻을 통달할' 족적 하나를 남기고자 하는 원대한 목표에 있을거라 생각했다. 이를테면 노벨 문학상이나 안데르센 작가상 같은 것. 나는 타인의 인정과 목적없는 삶을 무엇보다 두려워하는 자본주의형 인간이라, 이유없는 진취보다는 기승전결을 갖춘 영웅의 서사를 상상하는 게 더 쉬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왜 그렇게 세상 만물을 공부하시는 데 열심이냐'는 나의 질문에 내놓은 언니의 답은 심플했다.
모르는 걸 알면 즐겁거든요!
그냥 궁금하니까. 몰랐던 걸 알면 행복하니까. 정말 그런 사소한 이유가 열정의 동기가 될 수 있다고? 미심쩍어 하던 나는 이어지는 언니의 얘기를 듣고 비로소 '목적없는 즐거움'이 무엇인지 이해하게 됐다. 언니에게 도전이란 곧 알의 껍질을 깨고 나오는 과정과 같았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부터 결혼 후 40대가 되도록 줄곧 '동네에서 손 꼽히는 모범생'으로 살았다는 미령 언니. 오로지 '공부만' 하며 보낸 10대와 20대, '나이도 잊을 만큼' 육아에 매달린 30대를 지나, 40대는 논술강사로 처음 직업적 보람을 느꼈지만 그마저도 ‘책만 죽어라 파던’ 젊은 시절과 크게 다르지 않아 설명하기 어려운 갈증을 느꼈다고 한다. 그러던 중 50이 되던 해 갑상샘에 생긴 암은 '앞으로도 쭉 이럴 것 같은’ 삶에서 용감하게 핸들을 틀 수 있는 전환점이 됐다.
'전과 같은 모습으로는 집에 돌아오지 않겠다'는 다짐은 단단하게 언니의 삶을 둘러싸던 껍질에 균열을 만들었다. 오랜 시간 1m 폭의 좁은 책상을 벗어나지 못했던 언니의 세계는 한지 위에 먹을 머금은 붓으로 내려긋는 획, 캔버스에 스미는 물감의 색, 오픈시에 업로드한 NFT 작품을 통해 멀리 멀리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마치 새로운 은하계를 탄생시키는 빅뱅처럼.
인간발달 단계상 가장 '폭발적인 성장'이 이뤄지는 시기를 일컫는 용어, 사춘기(Puberty). 이 단어는 원래 '꽃피우다' 또는 '어른의 시대'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 Pubertas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그래서 사춘기의 다른 말은 '꽃나이', 혹은 '봄나이'다. 그러니까, 미령 언니의 '봄'은 지금이 아닐까? 50대를 인생의 4계 중 가을에 비유하는 것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는 생각을 했다. 50이 돼야 비로소 새순을 틔우는 삶도 있다고, 만개하기까지 아직도 한참이 남은 50대도 있는 거라고.
인터뷰가 끝난 뒤 언니는 창원으로 돌아갔고, 나의 일상도 '합리적 염세주의자' 특유의 시니컬한 풍경 속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분명 달라진 것은 있다. 이게 전부는 아니라는 것. 나이드는 것은 누구나 똑같이 겪는 현상이지만, 나이드는 것과 늙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라는 것. 내가 나이기를 끈질기게 포기하지 않는 한, 인생의 새로움은 어디에나 있다는 것 말이다. 이제, 핸들을 바로 잡을 시간이다.
(미령 언니와의 인터뷰 전문은 7월 텀블벅 펀딩을 통해 출간되는 끗질 인터뷰집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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