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홀로서기 중인 ‘은지 언니’와의 인터뷰 비하인드
넘어진 나를 다시 서게 만드는 뿌리의 힘
“언니도 언니가 필요하니까”
끗질은 중장년 여성들의 목소리를 조명하는 여성 인터뷰 프로젝트다. 시즌1에서는 4050 언니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담는다. 단행본에 실린 인터뷰 전문 외에 프로젝트에 기획부터 언니들을 만나는 과정을 담은 비하인드 스토리를 릴레이 연재로 소개한다.
남들은 학창 시절 스무 살에 대한 로망이 컸다는데, 나에게 스무 살은 사형선고처럼 느껴졌다. 스무 살이 되면 청소년 버스 요금 할인도 못 받는데, 천하태평 청소년 시절이 이렇게 끝난다니. 청소년기를 이미 자유분방하게 살아서 어른이 되어 누릴 자유는 생각도 못 하고 어른의 책임만 무겁게 다가왔다. 어른이 이렇게 휘뚜루마뚜루 사는 건 줄 알았다면 나이 듦을 고민할 시간에 청소년기를 더 즐겼을 텐데.
나이 먹는 걸 일찌감치 두려워해서일까. 서른은 아무렇지 않았다. 가장 끔찍한 스무 살도 지나왔는걸. 50대인 은지 언니는 스무 살이 곧 자유라고 생각했다. 학창 시절 가장 큰 일탈이 하교 후 집으로 가지 않고 친구들과 떡볶이를 먹은 일이니 그럴 만도 하다. 하지만 대입 후 쉬지 않고 아르바이트를 했던 언니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환경이 변한다고 사람이 변하는 건 아닌 것 같다.
제주에서 나고 자라 육지로 나온 지역 청년, 장녀, 시집살이, 무능력한 남편, 세 아이의 엄마, 생계부양자, 방문 학습 교사. 언니의 이야기는 하나로 모이지 않고 자꾸 뻗어나갔다.
이상했다. 이리저리 뻗어나가는 이야기를 들을수록 언니의 삶이 나와 겹쳐 보였다. 성향도, 살아온 길도, 나이도 전혀 다른데 언니는 나와 비슷한 고민을 했다. 앞으로 뭐 해 먹고살지. 육지에서의 30년을 정리하고 다시 고향 제주로 돌아가는 언니의 고민은 나도 요즘 들어 부쩍 하는 고민이었다. 삶은 변수가 너무 많아서 이젠 변수가 상수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그러니까 우리는 변화무쌍한 삶 속에서 홀로 서는 이야기를 했다.
홀로 선다는 건 완성형이 될 수 없고, 영원히 다시 일어서는 과정인 것 같아요. 나는 제대로 서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보면 넘어진 채고. 다시 일어섰는데 아직 중턱이고 갈 길은 한참 남아있고요.
언니는 요즘 인생 2막을 준비 중이다. 제주에서 육지로 올라온 지 30년, 육지 생활을 정리하고 다시 고향 섬으로 돌아가서 일구는 삶이다.
언니는 지난 30년이 하루살이 삶이라고 말하지만, 세 아이를 먹이고 입히며 생계를 유지하는 게 얼마나 수고스러운 일인지 나는 겨우 나 하나를 먹이고 입히면서 어렴풋이 짐작해본다.
언니는 이혼하던 즈음 살았던 도시에서의 기억이 좋지 않았다. 예기치 못한 이혼으로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했고 학습지 교사 일도 한창 바쁠 때였다. 하루에 50여 과목을 가르치고 나면 이미 자정이었다. 살던 곳에 대한 기억이 없을 만도 하다. 언니에게 그곳은 돈 벌고, 먹고 자는 것 외의 삶이 끼어들 틈이 없었지만, 아이들은 달랐다.
언니가 생각하는 고향은 사람과의 추억이 고리가 되는 곳인 듯하다. 뿌리 없는 삶을 30년 동안 살고도 홀가분하게 떠날 수 있는 건, 고향에서 이어진 아주 깊고 단단한 뿌리가 언니를 붙들고 있어서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는 동안 우리의 홀로서기에 마침표를 찍을 순 없겠지만, 나를 지탱하는 끈은 더 많이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몇 번이고 쓰러져도 다시 일어서서 허리를 꼿꼿이 펼 수 있도록.
인터뷰를 마치고 제주도로 가기 전에 밥 한 번 먹자고 언니와 손을 꼬옥 마주 잡았다. 따뜻한 손의 온기에 언니와 나를 연결하는 끈이 슬그머니 생겨나는 걸 느꼈다.
(은지 언니와의 인터뷰 전문은 7월 텀블벅 펀딩을 통해 출간되는 끗질 인터뷰집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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