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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독 Feb 10. 2024

촉이 좋다는 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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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초에 사주를 보러 간 경험이 있다. 처음 보는 사주였지만 평소 사주를 그리 믿지는 않아서 가벼운 마음이었다. 혼자서 평일에 방문했는데 남자 혼자서 오는 건 드물다며 신기해하셨다. 전반적인 운에 대해서 여쭈어봤다. 올해는 돈이 덜 모일 것이라는 말. 무난한 해가 될 거라는 말. 7~8월에 필연적인 인연이 찾아온 다는 말. 건강엔 문제가 없을 거라는 말. 다니고 있는 직장을 별 탈 없이 오래 다닐 거라는 말.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도 건강하고 무탈할 거라는 말. 멀지 않은 미래는 평화롭게 지나갈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마지막에 들었던 말은 촉이 좋은데 사주를 왜 보러 왔냐는 것이다. 촉대로 살아가면 별 탈 없을 것이라며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 사주가 될 것이라고 그러셨다.


사주를 처음 보러 간 건 그런 미신이라도 붙잡고 위로받고 싶어서였다. 평범한 하루에 감사하며 살고 싶지만 불평불만이 많은 날들이었다. 무탈한 하루에 감사하자는 말을 쉽게 지키지 못했다. 어떤 욕심들과 불안이 점차 나를 지치게 만들었다. 슬럼프에 빠진 걸까 주변의 말들이 소음으로 느껴졌고 반복되는 시간이 지루하게만 느껴졌다. 하고 싶은 것, 즐거운 일도 없었고 그저 살아가니까 살아갔다. 눈이 떠지니 일어났고 걸으니 앞으로 나아갔다. 당장이라도 터질 것만 같은 예민하고 꽉 찬 풍선 같았다. 그런 상황에 사주 집 선생님께서 내게 하는 말들은 어느 정도 위로가 되었던 것 같다. 좋은 말들을 들어서 기분이 좋았다. 내용이 어떻든 잘하고 있으니 지금처럼 잘 나아가라고 그런 말인 것 같았다.


촉이 좋다는 말이 좋았다. 실제로 나는 촉대로 살아온 경험이 많다. 싸하고 불안하면 우회했고 위험해도 이 길이 맞는 것 같으면 감수하고 직진했다. 결과는 대부분 좋았고 실패가 다가와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나아갔다. 견딜 수 있을 만큼의 고통들과 어느 정도의 시간의 약이 발라져 새살이 돋을 땐 간지럽긴 해도 생긴 굳은살 덕에 덜 아팠다. 앞으로도 내 촉 대로 살아갈 것이기에, 나 자신을 무엇보다 믿어주고 응원해 준다. 


느려진 시간은 언젠가 흐른다. 고여서 썩지만 않으면 푸른 물길을 철썩이며 흐른다. 촉이 좋다는 말에, 나 자신을 더욱 믿어 볼만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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