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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독 Mar 18. 2024

언제부턴가 그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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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 많으면서도 때로는 차갑게 밀어버리는 사람. 당신과 나는 처음엔 좋았지만 끝은 별로였어요. 나보다 당신을 더 위했던 사람. 당신께 배려와 존중을 당연하다는 듯 건네지만 사실은 나도 그걸 바래요. 그날 얼굴의 미세한 근육을 무의식 중에 관찰할 때. 당신의 표정을 보고 기분을 알게 됐는데 같이 웃고 울고 싶어서요. 곁에서 함께하고 싶어서요. 좋아하는 걸 함께하기보다 당신이 싫어하는 걸 안 하고 싶은 마음. 은은한 안정감을 좋아해요. 말 수가 적고 사차원이라서 속 이야기를 잘 안 하는 사람. 어느 순간부터 당신 앞에선 수다쟁이가 됐어요. 


우연히 터널 안 차에서 들었던 올드 팝송. 적당한 백열등 빛의 가로등 밑을 지나가며 창문을 조금 열었는데요. 어떤 계절이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때는 적당한 온도의 바람이 볼을 스쳤어요. 컵홀더에 넣어둔 차가운 커피가 밍밍해지도록 이야기했어요. 마실 시간도 없었죠. 그만큼 기분 좋은 순간이었으니까요. 당신이 곁에 없어도 그 순간들을 양손에 머금어 간직했습니다. 결과가 어떻게 되었든 몇 안 되는 행복한 순간이었으니까요. 가끔 그립고 힘들 때 주먹을 펴고 장면들을 펼쳐 보려고요. 마법을 부려 그때로 돌아간다 한들 그만큼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건 아마도 후회는 없다는 의미겠어요. 


여전히 나는 정이 많고 배려와 존중을 몸에 달고 살아요. 누군가의 표정을 관찰하며 기분을 파악하고 소음을 피해 안정감을 원합니다. 말 수도 조금 늘었고요. 당신 덕에 언제부턴가 그런 사람이 되었어요. 


조금의 씁쓸함과 아쉬움, 그리움. 시간이 지나서 조금은 무뎌진 순간들. 마냥 슬프지만 않았던 관계가 끝이 나면서 어느새 더 좋은 사람이 되어있습니다. 지금의 나는 나름 좋아요. 아픈 기억보다는 웃던 날들을 간직하고 가끔 꺼내어 볼래요. 


우리는 언제부턴가 더 좋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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