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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독 Apr 08. 2024

나를 힘들게 하는 것

빼기

하루의 시작부터 재수가 없는 날이 있다. 갑작스러운 폭우가 내린다던가 간발의 차이로 버스를 놓치는 일. 직장에서 겪었던 어제의 실증이 오늘도 유지되고 죽도록 싫은 사람은 오늘도 내 눈앞에 보인다. 쌀국수를 먹으려 따로 포장된 국물을 부었는데 엎는 일. 하얀 옷을 입었는데 빨간 국물이 튀기는 일. 기분 좋은 날 약 올리듯 찾아온 목감기. 타이밍이 어긋나는 그런 날들은 예민하게 하루를 시작한다.


예민하고 싫증이 나니까 화가 많아졌다. 남 탓은 하기 싫은데 그렇다고 내 탓인가 싶기도 하다. 내가 크게 잘못했나. 억울하다. 잘하고 싶어도 마음이 편하지 않으니 결과가 좋을 리 없다. 잘하던 것도 그르치기 마련이고 결국엔 돌아오는 건 자책뿐이었다.


매일 같이 해내던 것들이 어느 날엔 그렇게 어렵다. 늘 해왔던 것이 어느 날엔 버겁다. 한 발자국 나아가기도 힘들 때가 있다. 모래주머니를 차고 아령이 담긴 가방을 메고 걷는 것처럼 몸이 무겁다. 마음의 짐이 나를 바닥으로 끌어당기면서 점점 주저앉고 싶었다. 예민함은 모든 것을 날카롭게 만들었다. 조금만 스쳐도 베이고 피가 난다. 사소한 것들 조차 온전하게 놔두지 않는다.


이 모든 감정은 스스로가 만들어낸 감정 아닌가. 결국 시간이 지나고 나면 후회와 되새김이 나를 괴롭힐 걸 알지만 당장에 기분이 별로인걸 어떻게 해야 할까. 나를 힘들게 하는 것들은 나 스스로에게서 나온 것들이다. 늘 받아들이기 나름, 마음먹기 나름이란 걸 알면서도 잘 안 되는 날이 찾아온다. 어떤 욕심, 어떤 바람이 지켜지지 않을 때, 원하는 대로 살아지지 않는 삶이 싫증 날 때. 허무와 공허함을 느낀다. 작은 예민함에서 시작된 것들이 큰 먹구름을 불러와서 가시 같은 비를 뱉는다.


나를 제일 힘들게 하는 건 나 자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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