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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독 May 13. 2024

도봉산역

언젠간 너에게 일어날 일이니 너무 놀라지도 말고 무서워하지도 말고 듣거라. 너는 나이에 맞는 삶을 살지 못할 것이다. 네 또래 녀석들은 원하는 걸 매번 가질 것이고 또 누군가가 차려주는 밥을 먹을 동안 너는 굶으며 부모를 기다릴 것이다. 좋아하는 게 없고 눈이 떠지니까 살아갈 것이며 시와 노래를 가까이한다는 이유로 왜소한 몸을 가지고 너를 구석에 방치할 것이다.


너는 세상이 미울 것인데 그건 어쩌지 못할 것이다. 부모가 곁에 있지 않아도 그들은 너를 그만큼 사랑하기 때문이다. 너는 밖에 나가 뛰놀고 싶을 것인데 열두 달 중에 석 달은 걷지를 못할 것이다. 너는 볕을 볼 수도 없으며  산책을 할 수도 없는 상태로 석 달을 살 것이다. 꽤 자주 그럴 것이다.


눈앞에 봄날은 지나갈 것이고 너는 그 곁을 맴돌지 못할 것이다. 걸음을 석 달간 잃을 테니 말이다. 걷게 되었을 때 힘겹게 세상밖으로 나가 강한 빛을 바라볼 것이다. 이미 지나간 온기는 없고 쌀쌀함이 널 맞이할 것이다. 추운 날 얇은 옷차림에 몸이 시려 죽겠는데 오랜만에 볕은 쬐고 싶어서 태양을 바라보니 더 눈이 부실 것이다. 그리움에 눈물도 날 것이다. 그래도 너무 많이 울지는 말거라. 살면서 사랑하는 주변 것들이 점점 떠나는 경험을 할 것이다. 그때 후회 없이 울 거라. 다음에 향수가 찾아오더라도 그리움에 익숙해질 것이고 후회는 점점 줄어갈 것이다. 섬세하게 순간을 들여다볼 줄 알게 될 것이다.


네 할아버지가 많이 아플 것이다. 일을 쉬는 날에도 너는 병원을 모시고 가야 할 테고 운전하다 울컥할 것이다. 가끔은 화가 치밀어 오를 것인데 누구를 탓할 수도 없어 그냥 울 것이고 울음이 그치면 집으로 돌아가 글을 쓸 것이다. 밖으로 나가 별을 보며 달릴 것이다. 하지만 너는 그 글을 누구에게도 읽어주지 못하는 삶을 살 것이다. 그래도 너는 너를 믿고 있을 것이다. 훗날 네가 글을 쓰지 못해도 너의 서사를 다른 사람이 읽어줄 것이다. 언젠가 될 거라는 말을 마음속에 수천 번 외칠 것이다. 그거 하나만큼은 놓지 말거라. 그 믿음 하나 때문에 너는 될 것이다.


자주 말을 하지 않게 될 것이다. 속으로 생각하는 일을 기억하고 글과 시로 적을 것이며 어떨 때는 소리쳐 읽을 것이다. 사람들은 네가 만든 걸 좋아해 줄 것이고 사람들이 좋아해 주지 않아도 너는 그 자체를 사랑하니 하던 일을 마저 해라. 어떤 녀석은 네가 뭐냐며 무시할 것이고 어떤 사람은 위로받았다 할 것이다. 그들의 말을 무시하고 쓰던 글을 마저 쓰거라. 그들은 너를 모른다. 네가 사랑하는 것을 사랑하는 것. 그것이 삶의 가장 큰 기쁨이다. 


너는 가난하지도 부하지도 않을 것인데 물질에 눈먼 사람이 되진 않을 것이다. 문인이 되고 싶던 그 어린 마음을 잊지 말거라. 먼 훗날 네가 사랑하게 된 작가와 마주 하는 날이 올 것이다. 몇 개의 단어들로 온기를 나누고 술자리에서 도망쳐 일기를 쓰는 게 편한 사람이 되어도 괜찮다. 모든 글자가 지워지고 단 한마디만 해야 한다면 당신이 당신을 사랑한다면 결국 어떻게든 이뤄지고야 말 것이라는 말을 하겠다. 네가 너를 사랑하는 그 마음만은 어디서든 잃지 말거라. 너는 어떻게든 이루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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