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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독 May 14. 2024

겨울 후쿠오카



낭만을 쫒는다. 현실에 매이지 않고 감상적이고 이상적으로 사물을 대하는 태도나 심리. 또는 그런 분위기. 아직은 쌀쌀한 날씨여서 겉옷을 챙겨 다녀야 하는 그런 날. 직장동료와 후쿠오카로 떠났다. 근무를 마치고 공항으로 향했다. 바쁜 일상으로 인해 환전도 공항에서 해야 했고 발권도 부랴부랴 했다. 


우리는 MBTI J(계획형)였는데 이번 여행을 준비하면서 이상하리만큼 계획이라곤 없었다. 무엇이든 즉흥적으로 행동하기 바빴다. 맛집 리스트 같은 건 없다. 도착해서 눈앞에 있던 카레집. 배가 고파서 무작정 들어가서 주문했다. 뱃속에 음식을 채워 넣기 바빠서 무슨 맛이었는지 기억도 안 난다. 밥을 먹고 나왔는데 비가 오더라. 우산 같은 건 당연히 없었다. 에어비엔비 체크인을 하러 갔는데 입금이 안 됐다고 한다. 동료 덕분에 집을 잃었다. 바로 옆 숙소에 찾아가 빈방을 결제하고 짐을 풀었다. 

날씨는 오락가락하며 머리와 옷을 적셨다. 떨어지는 비를 맞으며 걷고 뛰어다녔다. 두 다리로 젖은 땅을 느끼며 습한 공기와 은근 따뜻한 바람을 머금었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도 있었지만 그냥 걸었다. 인적이 드문 골목길을 헤집고 다니며 눈과 카메라로 빛을 기록했다. 


오랜만의 여유다. 평범한 날엔 방학시간표처럼 촘촘한 하루를 보낸다. 어디론가 떠나게 되면 굳이 계획을 세우려 하지 않는다. 고여서 썩기보다 흐르며 빛나고 싶다. 낯선 곳을 닿는 동안 머리를 비우고 마음이 쉴 수 있도록. 타지를 돌아다니는 건 늘 특별한 기대감을 품는다. 처음 먹어보는 음식, 생김새가 다른 사람, 그날의 구름과 빛, 도로 위 차분하지만 힘찬 자동차, 옛 명동이 생각나는 복고풍 북적한 거리, 어색한 한국말로 안부를 묻는 사장님, 외국인에 대한 적잖은 예의와 배려. 남의 일상에 이입하기. 장소만 후쿠오카로 옮겨졌을 뿐, 그저 평범한 일상을 보내는 사람들이다. 평범함이 가져다준 특별함을 간직한다. 


어떤 목적 없이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보낼 수 있는 시간에 고맙다. 소중한 사람과 기웃거리기도 하고 비가 내리면 그냥 젖기. 별것도 아닌 것에 웃으며 맛있는 식사가 아니라도 여유롭게 보내는 시간. 버터가 올라간 식빵에 커피를 마시며 돌아갈 준비를 하던 때. 별거 아니지만 근사한 세상에 살고 있구나. 이토록 예쁜 순간에 머무를 수 있어서 다행이다. 봄비가 내리던 후쿠오카엔 쫒던 낭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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