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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독 Jun 22. 2024

시작이 두려웠던 이유는

사랑

유독 마음이 이끌렸던 사람.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이었다. 대화라는 건 듣기와 말하기를 통해 서로를 알아가는 수단이기도 하다. 진심의 정도가 다른 문장들이 오고 가기도 하고 그런 문장들과 목소리 톤에 섞인 감정들을 내세우며 몰랐던 사실을 알기도 한다.


그땐 그랬어, 그럴 땐 이렇게 했으면 좋았을걸. 나는 따뜻한 커피를 좋아해. 우리 아빠는 당뇨가 있어. 어릴 적 물에서 놀다가 사고가 났는데 여전히 물을 무서워해. 거짓말하는 사람이 싫어. 비 오는 날 보다 맑은 날이 더 좋아. 느끼한 음식이 싫어. 나에게 있어서 일은 애증이야. 책임감 있는 사람이 좋아. 나는 매일 달리기를 해. 평소엔 글을 쓰고 많이 읽으려고 해. 사진을 좋아해. 나는 이런 사람이야. 너는?


말끝에 ‘너는?’이라는 끝맺음은 자연스레 따라왔다.  적나라하게 내 앞에 앉은 사람에게 관심을 보이고 있어서였다. 나를 알려주려고 애쓰는 대화가 늘 있었다. 나는 이런 사람이니까 알아주세요. 알았으면 좋겠어요. 당신은 어떤 사람이에요, 나에게 알려주세요 궁금해요.라고 말이다.


모든 관심은 호감에서 비롯되어 점점 커져갔다. 일방적이었던 관계들은 모두 끝나서 없어져 버렸지만. 시작이 두려웠던 이유는 어차피 헤어질 그런 쉬운 관계여서가 아니라, 우리의 헤어짐이 어려울 걸 알아서였다.


정이 많으면서도 때로는 차갑게 밀어버리는 사람. 당신과 나는 처음엔 좋았지만 끝은 별로였어요. 나보다 당신을 더 위했던 사람. 당신께 배려와 존중을 당연하다는 듯 건네지만 사실은 나도 그걸 바라요. 그날 얼굴의 미세한 근육을 무의식 중에 관찰할 때. 당신의 표정을 보고 기분을 알게 됐는데 같이 웃고 울고 싶어서요. 곁에서 함께하고 싶어서요. 좋아하는 걸 함께하기보다 당신이 싫어하는 걸 안 하고 싶은 마음. 은은한 안정감을 좋아해요. 말 수가 적고 사차원이라서 속 이야기를 잘 안 하는 사람. 어느 순간부터 당신 앞에선 수다쟁이가 됐어요.


우연히 터널 안 차에서 들었던 올드 팝송. 적당한 백열등 빛의 가로등 밑을 지나가며 창문을 조금 열었는데요. 어떤 계절이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때는 적당한 온도의 바람이 볼을 스쳤어요. 컵홀더에 넣어둔 차가운 커피가 밍밍해지도록 이야기했어요. 마실 시간도 없었죠. 그만큼 기분 좋은 순간이었으니까요. 당신이 곁에 없어도 그 순간들을 양손에 머금어 간직했습니다. 결과가 어떻게 되었든 몇 안 되는 행복한 순간이었으니까요. 가끔 그립고 힘들 때 주먹을 펴고 장면들을 펼쳐 보려고요. 마법을 부려 그때로 돌아간다 한들 그만큼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건 아마도 후회는 없다는 의미겠어요. 사실 조금은 그립기도 해요.


여전히 나는 정이 많고 배려와 존중을 몸에 달고 살아요. 누군가의 표정을 관찰하며 기분을 파악하고 소음을 피해 안정감을 원합니다. 말 수는 조금 늘었고요. 당신 덕에 언제부턴가 그런 사람이 되었어요.


조금의 씁쓸함과 아쉬움, 그리움. 시간이 지나서 조금은 무뎌진 순간들. 마냥 슬프지만 않았던 관계가 끝이 나면서 어느새 더 좋은 사람이 되어있습니다. 지금의 나는 나름 좋아요. 아픈 기억보다는 웃던 날들을 간직하고 가끔 꺼내어 볼래요.


우리는 언제부턴가 더 좋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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