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어리숙하고 어렴풋한 감각과 철학
우리는 지금, 무언가를 잃었다.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말로 정의할 수는 없지만, 분명히 잃었다는 감각만은 남아 있다. 이 감각은 어떤 분노나 공격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누가 옳고 누가 그르냐를 가르는 분노의 언어가 아니라, 우리가 밟고 서 있던 문명의 층위가 어딘가에서 무너졌음을 바라보는 조용한 탄식이다.
이 감각은 철학의 부재에서 비롯된다. 사람들은 더 이상 “왜?”라는 질문을 하지 않는다. 진리를 탐구하려는 집념은 사라지고, 빠르고 효율적인 입장정리만이 남았다. “너는 어느 편인가?”라는 질문은 넘치지만, “그 선택의 기반은 어디서 왔는가?”라는 질문은 실종되었다. 철학이 사라진 자리에 남은 것은,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이 아닌 감정의 정당화와 속도의 우위다. 철학이 말라붙자, 판단은 얕아지고, 확신은 과잉되었다.
교육 역시 제 역할을 하지 못한 채 표피화되었다. 오늘날의 교육은 더 이상 글을 공들여 완성하는 경험, 깊이 있는 텍스트에 몰입하는 인내의 시간, 토론과 토의 속에서 자신을 부수고 다시 세우는 경험을 제공하지 않는다. 대신 ‘빨리 쓰고’, ‘효율적으로 정리하고’, ‘기술적으로 설득하라’는 목표가 교육의 중심이 되었다. 깊이 없는 글쓰기를 반복하며 자란 세대는 결국 깊이 없는 판단과 빠른 분노, 얕은 공감의 태도로 사회에 진입한다. 교육은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변질되었고, 지금의 시대를 형성한 결정적인 토대가 되었다.
정의도 마찬가지다. “정의”는 여전히 존재하지만, 그 정의가 살아 있는지 죽은 것인지조차 구분하기 어렵다. 많은 경우, 정의는 실제의 실천이 아니라 구호로 소모된다. 누군가를 향한 비난과 분노를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정의’가 소비되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정의는 고통스럽게 질문하고, 고심하며, 자신을 돌아보는 본래의 자리에서 멀어졌다.
윤리의 영역 또한 침식되었다. 인격적으로 존경할 수 있는 존재는 점점 드물어졌고, 괜찮아 보였던 인물들조차 실망을 안겨주는 일이 반복되면서, 윤리 자체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고 있다. 누구를 따라야 할지 모르는 시대, 무엇을 기준 삼아 살아가야 할지 혼란스러운 사회 속에서, 인간은 윤리의 나침반 없이 부유한다.
이렇게 철학, 교육, 정의, 인격이라는 문명의 가장 깊은 토대들이 흔들리고 있는 지금, 우리는 말할 수 없이 중요한 지점 앞에 서 있다. 누가 나쁘고 누가 잘못했는가를 따지기 전에, 우리 모두는 어느새 이 흐름에 젖어 들었음을, 나조차도 그러한 사고에 물들어 있다는 사실을 마주할 필요가 있다.
"굳이 사람들이 잘못됐다는 말을 하고 싶진 않다.”
"그보다 훨씬 더 근본적인 무언가가 존재한다고 어렴풋하게 느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