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시대

이성의 이상화와 규범의 불완전성에 대하여

by Kn

현대 사회가 감정에 과도하게 휘둘리는 시대라는 비판은 자주 제기된다. 감정적 여론 형성, 격한 댓글, 분노의 대중화, 순간적인 판단 등은 이성의 쇠퇴를 보여주는 것처럼 보이고, 일부는 ‘정의’마저도 감정의 흐름에 잠식당한 채 왜곡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시각은 이성과 규범에 대한 지나친 이상화를 전제로 하며, 감정의 역할과 사회적 진보 가능성에 대한 현실 인식을 간과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나조차도).


1. 이성 중심주의의 맹점


이성은 종종 ‘객관적’, ‘보편적’, ‘합리적’으로 간주되지만, 인간의 이성이 항상 그렇게 작동해온 것은 아니다. 철학자 폴 파이어아벤트(Paul Feyerabend)는 과학조차도 일관된 논리나 규범이 아닌 문화적 맥락과 정치적 권력에 따라 구성된다고 주장했다. 하물며 도덕이나 정의에 관한 이성적 판단이 ‘절대적’일 수 있다는 믿음은 이성이 실천에서 얼마나 자주 타협하고 굴절되었는지를 외면한 신화일 뿐이다.

실제로 역사 속 수많은 ‘합리적 판단’들은 그 시대의 권력과 편견을 내포한 것이었으며, 노예제나 여성 차별, 식민주의, 장애인 격리 같은 제도들은 오랫동안 ‘이성적 질서’라는 이름 아래 유지되어 왔다. 감정적 분노와 연대가 아니었다면, 그런 ‘합리적 규범’은 결코 흔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2. 규범은 보존의 수단일 뿐, 결코 정의 그 자체는 아니다.


법과 제도, 사회적 규범은 마치 이성의 결정체처럼 여겨지지만, 그것들은 본질적으로 기득권 질서의 보존 장치다. 당대의 규범은 대개 기존 구조에 유리하게 설계되어 있으며, 윤리적 이상과는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

예컨대 미투 운동, 블랙라이브스매터(BLM - 흑인 범죄자 체포 과정에서 백인 경찰의 과잉 진압에 대해 주로 항의하는 사회 운동), 혜화역 시위 등은 기존의 규범 구조 바깥에서 출발한 감정적 항의라고도 볼 수 있다. 이 운동들은 ‘감정적'이라는 이유로 많은 이성주의자로부터 비난받았지만, 실상은 감정이야말로 침묵하던 목소리들이 등장할 수 있는 유일한 출발점이었다. ‘감정은 신호일 뿐’이라는 말은 감정의 주체인 개인의 구체적 고통과 경험을 너무 가볍게 축소하는 표현일 수 있다. 오히려 감정은 고통을 인식하고 정의를 요구하는 실천의 동력이다.


3. 감정은 혼란의 원인이 아니라, 억압된 목소리의 형식이다


감정은 종종 즉흥적이고 일시적인 것으로 치부되지만, 실제로는 사회 구조 속에서 억눌려온 집단들의 자기표현 방식이기도 하다. 이성적 언어와 규범은 많은 이들에게 익숙하지 않고 배제적인 언어다. 가령 법정 언어는 계층, 언어 능력, 교육 수준에 따라 누군가에게는 오히려 침묵을 강요하는 구조로 작용한다.

반면 감정은 교육 수준이나 담론의 훈련 없이도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즉각적인 정당성의 언어'다. 정의란 사회 다수의 담론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기존 체계 바깥에서 발화되는 ‘비정형(틀이 정해지지 않은)의 정의 감각’에도 깃들 수 있다. 감정은 그 자체로 소외된 자들의 도덕적 항의이자 가장 인간적인 윤리의 신호다.


4. 이성의 오판은 감정보다 위험하다.


감정적 판단은 때로 왜곡을 낳는다. 그러나 이성의 왜곡은 훨씬 더 은폐되고, 지속적이며, 구조적이다. 감정적 판단의 오류는 드러나고 논의될 수 있지만, ‘이성’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오판은 ‘정당한 절차’라는 외피를 쓰고 반복된다.

극단적인 예로, 관료주의적 판단, 형식주의 판결, 행정적 비윤리는 대개 감정 없이 처리된 ‘이성적 결정’의 결과다. 이런 결정들은 피해자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절차만 따랐다는 이유로 정당화되며, 오히려 감정 없는 판단이 더 잔혹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5. '정의’란 종종 감정적이며, 정치적이다.


정의는 추상적인 이상이 아니라 특정 시공간에서 살아 있는 사람들의 고통과 기대, 분노와 희망이 충돌하며 형성되는 정치적 결정이다. 아리스토텔레스조차 '정의’는 단순히 법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조정되는 동적 원리라고 보았다.

현대 사회의 감정적 흐름은 이러한 '동적 정의’에 대한 요청이다. 사람들은 더 이상 형식적으로 정리된 규범적 정의에 안주하지 않는다. 오히려 각자의 고통, 차별, 불평등을 반영하는 '보다 살아 있는 정의’를 요구하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감정은 판단의 오류가 아니라, 판단을 유도하는 인간적 근거로 기능하고 있다.

감정의 시대는 이성의 파괴가 아니라, 이성이 놓쳐온 세계를 되찾으려는 복원의 시도일 수 있다. 감정이 표출되는 사회는 오히려 살아 있고, 다양한 목소리들이 존재하며, 그 안에서 새로운 정의가 생성될 가능성이 있다. 우리는 감정적 판단에 대해 더 세심한 분석과 구분이 필요하지, 그것을 일률적으로 ‘위협’으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

정의는 언제나 논쟁적이며, 감정은 그 논쟁의 불을 지피는 가장 인간적인 불꽃이다. 이성의 시대를 추억하며 감정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통해 이성을 확장하는 시대, 그것이 우리가 진정 도달해야 할 윤리적 성숙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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