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흔히 이성을 차가운 판단의 도구로, 감정을 뜨거운 반응의 결과로 이해한다. 그러나 이러한 구분은 이성과 감정의 깊은 작동 구조를 간과한 단순화일 수 있다. 이성과 감정 모두 외부의 ‘힘(power)'에 반응하고, 때로는 극렬히 저항하는 기질을 지닌다. 문제는 이들이 어떤 방식으로 저항하고, 저항의 근거는 무엇이며, 그 결과는 어떤가이다.
먼저 이성은 신념, 윤리 체계, 논리적 일관성과 같은 ‘사유의 구조물'과 결합한다. 이러한 구조물은 단순히 개인적 판단이 아니라, 공동체의 규범, 법률, 철학으로까지 확장된다. 예컨대, 인권선언이나 시민불복종 운동은 감정적 분노에서 비롯되었을지라도, 이성적 정당성과 사유의 구조 속에서 저항의 정당성을 확보하였다. 이성은 느리지만 지속적인 방식으로, 체계를 바꾸는 힘을 갖는다.
반면 감정은 수치심, 분노, 자존감, 고통, 공감과 같은 즉각적인 신호를 바탕으로 작동한다. 억울함, 모욕, 상실의 감정은 곧장 항거와 저항의 불꽃을 일으킨다. 역사 속 수많은 봉기와 시위는 감정의 극단적 반응에서 시작되었고, 감정은 존재 자체를 지키려는 본능적 저항의 힘을 보여주었다. 감정은 이성과 달리 언어로 완전히 해명되지 않으며, 때로는 사회적 공감대를 통해 더욱 확산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성과 감정은 서로 충돌하는 것만은 아니다. 감정이 신호를 보내고, 이성이 그 신호에 해석을 부여하며, 결과적으로 둘은 저항의 한 축을 구성한다. 감정은 저항의 연료이고, 이성은 그 연료를 올바른 방향으로 타오르게 하는 도구이다. 오히려 둘의 단절보다는 상호작용이 사회적 정의나 윤리의 실현을 가능하게 하는 열쇠일 수 있다.
이성을 통해 구조적 부조리에 저항하고, 감정을 통해 인간의 존엄을 방어하는 것. 이것이 현대 사회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고귀한 저항의 양상일지도 모른다.
+ 이성과 감정, 그리고 저항의 방식
가끔은 누군가의 고통에 눈물이 나고, 또 어떤 날엔 세상의 불의 앞에 주먹이 불끈 쥐어진다. 이럴 때 우리는 감정에 휩싸인다고 말한다. 또 어떤 순간에는 조용히 사유한다. 무엇이 옳은가, 어떤 방식이 타당한가, 끝없이 따지고 고민한다. 이것은 이성의 순간이다. 그런데 이 두 가지, 감정과 이성은 실제로 저항이라는 하나의 공통된 행동 앞에서 어떻게 작동할까?
감정은 생존에 가깝다. 인간은 고통에 먼저 반응한다. 억압과 모욕, 불공정함은 감정을 흔들고, 그 감정은 인간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본능적 저항으로 이어진다. 감정은 불의에 대한 가장 빠른 반응이자, 가장 진실한 항의이기도 하다. 역사 속 수많은 혁명은 분노와 슬픔에서 시작되었다. 감정은 불길처럼 번지고, 공동체를 하나로 묶는 응집의 불씨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감정은 쉽게 왜곡되고, 조작되며, 때로는 분노가 분노를 낳는 복수의 수단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이성이다. 이성은 감정이 일으킨 불꽃이 타오를 방향을 정해준다. 감정은 불꽃이고, 이성은 그 불꽃을 담는 등잔이다. 이성이 없는 감정은 휘발되고, 감정이 없는 이성은 생명력을 잃는다. 이 둘은 대립이 아니라 호흡이다.
현대 사회는 감정과 이성 중 무엇이 더 강한가에 대해 논쟁하기보다, 이 둘이 어떻게 만나고 조율되는가를 물어야 한다. 저항은 단지 구호가 아니라 방향이다. 감정으로 깨어나고, 이성으로 설계된 저항. 그것이 인간다운 저항의 방식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성 없는 분노도, 감정 없는 원칙도 아닌, 둘이 함께 만드는 단단하고 아름다운 저항의 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