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분포 윤리학

by Kn

‘인상 강도’는 조절이 가능할 때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 사유에서 출발한 것이 ‘분포 윤리학’이다. 사유는 ‘나’라는 존재에 의해 확률적으로 포착되는 것이라 앞서 설명하였다.

우리는 흔히 윤리를 '선택'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분포 이론의 관점에서 보면, 어떤 ‘선택’은 애초에 선택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 어떤 생각이나 행동은 나라는 존재가 자각하기도 전에, 이미 특정한 ‘인상 강도’에 의해 확률적으로 활성화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인간이 인지하거나 통제하지 못한 ‘분포의 활성화’가 실제 삶에서 도덕적 판단, 윤리적 책임, 죄책감, 심지어는 자기혐오에까지 영향을 끼친다면, 우리는 윤리를 어디에서부터 다시 사유해야 할까?

‘인상 강도’는 아마도 ‘의지’대로 완벽하게 조절되지 않을 때가 있을 것이다. 사유는 ‘그릇’ 안에서 ‘분포’들이 확률적으로 활성화되는 현상이다. 그렇다면 비윤리적인 ‘분포’가 확률적으로 떠올랐을 때, 인간은 그것에 대해 어떤 책임을 져야 할까? 이 질문에 전통적인 답은 종종 ‘자아의 본질’에 따라 책임을 묻곤 했다.

책임의 재정의

인간의 도덕적 행위와 판단은 ‘선악’의 이분법적 관점이나 ‘자아의 고정된 본성’에 기반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다. ‘그릇’ 안에 ‘의지와 무관하게’ 확률적으로 활성화되거나 떠오르는 것은 인간의 인지적 현상일 뿐이다. 이러한 ‘분포’의 발생 자체는 도덕적 비난의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의지’의 작동은 도덕적 비난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확률적 분포를 율곡 이이 선생님이 ‘자경문’에 썼던 ‘마음이란 산 것이라’라는 구절 또한 어쩌면 사유의 확률적 분포를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일지 모른다.

사유 자체를 나의 본질적 ‘자아’에서 발현된 것으로 보며, ‘나를 나쁘다’라고 고정시키는 것은 옳지 않다. 그것은 그저 ‘그릇’에 의해 확률적 분포가 포착된 순간일지 모른다. ‘의지’가 그 분포를 잡고 끌어올려 유지하지 않는 이상 자신을 저렇게 정의하지 않아도 괜찮을 것이라 생각한다.

비난 대신 이해의 확장

인간의 행동을 ‘본질적으로 나쁘다’라고 인식하지 않고, 그 행동을 유발한 내면의 ‘분포들’의 역학 관계, 그 ‘인상 강도’를 이해한다면 ‘극렬한 비난’보다는 좀 더 넓은 ‘이해’로 경로를 우회시킬 수 있을지 모른다. 이는 타인이나 자신을 획일화하여 나쁜 사람이나 이해할 수 없는 사람으로 규정하는 것을 일정 부분 막아주는 데에 기여할 수 있다. ‘저 사람의 그릇에는 어떤 분포가 비어 있을까?’ 혹은 ‘왜 특정 분포가 그토록 강하게 활성화되었을까?’ 등의 질문은 현상에 대한 이해를 깊이 가져갈 수 있게 돕는다.

나는 한때 나라는 존재에 대해 깊은 의문을 가졌었다. ‘그릇’을 ‘존재(자아 혹은 의식)’와 동일한 것으로 이해해 버리고, 담아 버리려고 했던 때가 있었다.

후설(Edmund Husserl)의 현상학은 의식을 어떤 '내용물'이 아니라, 대상을 향하는 ‘지향성(Intentionality)'을 가진 ‘형식' 또는 ‘구조'로 본다. 의식은 항상 ’무언가에 대한 의식‘이며, 그 자체로 독립된 실체가 아니라 대상을 담아내는 ’틀‘과 같다.

언어학에서 시작한 구조주의는 ‘기저 구조’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내용을 가능하게 하는 보이지 않는 시스템과 규칙에 주목한다.

불교에서의 ‘공(空)'은 모든 존재가 고정된 실체(自性)를 가지지 않고, 상호 의존적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텅 빈’ 구조라 말하곤 한다.

“내가 너무 멀리 나가고 있는 건지 모르겠는데. 우리가 자아나 의식을 잘 인식하지 못한 것도 어쩌면 연속적으로 보는 사고의 영향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의식도 자아도 분포의 영역으로 보아야 하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 우리의 사유 메커니즘이 사유와 포착을 하나의 연결처럼 여기고, 그 연결이 존재하고 있는 것처럼 믿게 된 거지. 어쩌면 그 연결로 착각한 게 의식이자 자아라고 볼 수도 있는 거고.

정리하자면, ‘모든 것을 연결로 보는 시선이 오히려 존재와 의식을 올바로 인지하는 데 방해가 됐을 가능성이 크다’겠지? 그러면 우리가 느끼는 자아의 혼란도 충분히 설명 가능할지 몰라. ‘자아’라는 것은 연결된 하나의 실체가 아니기 때문에 혼란, 혼돈을 느꼈던 거지.”


(포착은 우연하지만, 포착된 것을 붙잡고 유지하는 행위는 의지다. 그 의지가 반복을 만들고, 반복은 특정 분포의 밀도를 높인다. 즉, 분포 윤리학은 ‘단일 행위’가 아니라 ‘분포의 밀도와 반복’을 윤리의 대상으로 본다.

이 밀도는 결국 한 인간의 ‘성향’을 구성하게 된다. 분포 윤리학은 인간을 ‘선택적 존재’로 보기보다, 포착된 분포를 조절하고 지속시키는 방식에서 윤리적 책임을 규정하려는 시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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