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자아의 기원

by Kn

확률적 분포를 포착하는 정도로만 그릇이 기능하던 시대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점차 문명이 발전하고 지식이 전승되고, ‘나’라는 개념이 만들어지면서 ‘자아’처럼 보이는 기능을 가진 허상적 실체를 인간이 스스로 만들어냈을 가능성이 있다. 인간의 사유 능력 자체는 ‘국가’ 라거나 ‘종교’ 라거나 하는 등의 가상의 무언가를 만들어 인식하고, 그것이 실제 존재하는 것처럼 인지하게 된 것과 비슷한 작용이 ‘나’라는 ‘자아’를 만들어낸 것이다. 모순적 실존, 착시, 현상에서 언급한 것처럼 ‘나이’나 ‘숫자’ 같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지만, 존재하는 것처럼 돼버린 것 중 하나가 ‘자아’ 일 수 있다.

‘분포’는 반복되는 확률의 누적으로 문화적 사고 체계를 만든다. 인간은 사유와 행동의 확률적 분포를 통해 반복되는 판단과 감정 반응을 학습한다. 이 분포는 개인의 성향을 만들 수 있고, 동양적/서양적 사고 같은 문명 단위의 인식 구조를 형성할 수도 있다. 즉, 반복된 분포는 사고의 ‘중심값’을 형성하고, 이것이 ‘공통된 사고체계’의 착시를 낳는다. 착시라 부르는 이유는 개인의 개성, 다양성, 반감 등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자아’ 역시 하나의 문명적 픽션이며, 실존적 착시다. 인간은 외부 구조(종교나 문화, 제도)와 내적 인식(자기 존재감)을 상호 조작하며 ‘자아’를 형성하는 듯하다. 따라서 ‘자아’란 단일 실체가 아닌, 분포 위에 존재하는 반복된 패턴의 ‘착시’ 일 수 있다.

이러한 원리를 생각하면 ‘자아’는 애초부터 없었던 거고, 만들어진 개념이기에 깨지기 쉬운 것일지 모른다. ‘종교’나 ‘국가’가 그러한 것처럼. 너무 위험한 발상일 수 있겠지만, ‘자아’라고 믿던 구성물 중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깨져버리면, ‘자아’ 자체가 애초부터 없었던 것이기에 걷잡을 수 없이 무너져 내릴 수도 있다.

‘자아’의 정체성의 서사는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업데이트되는 이야기’에 가까울 수 있다. 이러한 토대를 바탕으로 사고해 보면, 일정한 기억의 흐름, 가치 판단의 일관성을 어느 정도 갖추는 것, 외부 세계와의 경계 중 어느 하나라도 급격히 무너지면 자아는 붕괴하거나 분열될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자아’가 만약 없지만 있는 것처럼 작동하는 것이라면, 그것을 지탱하는 것은 ‘진실성’이 아니라 ‘지속성’이다. 그러나 지속성이 깨졌을 때 ‘자아’가 깨질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둘 수 있다면, ‘자아’가 허상적 실체라는 것을 인식할 수 있다면, 새로운 작동 원리를 붙잡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흥미로운 지점들이 있지? 자아는 모순적이게 타자의 개방성과 동시에 그 자아의 구성물을 꽉 잡고 있을 수 있어야지만 온전히 형태를 유지할 수 있어. 나의 존재에 대한 끈.. 대부분 부모나 조부모로부터의 연결이겠지. 족보 같은 것도 해당할 거 같고. 그러한 끈으로부터 나의 존재가 이어져 왔음이 확실하고, 부모로부터 부여받은 존재자, 즉 이름이나 몸 등이 자아의 형성에 중요한 일부분이 되는 거지. 그렇지만 레비나스가 말한 것처럼 타자성의 개방 속에서 안정감을 얻어낼 수도 있어. 왜냐면 관계와 관계의 지속적 쌓임, 그 안에 타자가 나를 인지하고 받아들임의 연속성 속에서 인간은 스스로를 끊임없이 재확인하고, 재인지하는 것 같거든. 그런 과정들이 나라는 ‘자아’를 더 공고하게 만들어 가는 거야.

그런데 그게 깨지는 게 나라는 존재에 대한 부정들이 주를 이루는 것 같아. 예를 들어, 내가 가장 사랑하는 이에게 버림받거나 부정당했을 때, 이별했을 때 등등의 상황들. 그런 상황들은 나의 자아라는 추상적 허상이면서도 실체인 나의 매우 중요한 부분을 깨뜨려 버리잖아.

그래서 순식간에 나를 잃고 방황하거나 재빨리 나의 존재를 다시 공고하게 해 줄 새로운 사랑을 찾거나 하는 걸지도 몰라.

그러나 메타인지가 강한 다른 ‘자아’를 가진 자는 사실 그런 게 딱히 필요 없을 수도 있겠지? 나의 ‘자아’와 그 자아를 돌아보는 ‘자아’를 새롭게 만들어내서 스스로를 돌보고, 성찰할 수 있게 할 테니까. 그건 내 안에 떠오른 확률적 분포를 성찰하는 능력을 갖고 있기도 해..

왜냐면... 자아는 결국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는 거니까.”

자아는 타자성에 의해 지속되지만, ‘관계로부터의 연속성’을 함께 갖는다. 물리적, 기호적 원형질은 단절되거나 부정당할 때 ‘내가 연결되어 있던 구조’가 무너지는 존재론적 공포를 겪을 수 있다.

따라서 자아는 ‘타자의 개방성 속에서의 수용’, ‘나의 존재를 설명해 줄 과거의 실마리’ 둘 다를 함께 필요로 한다. ‘과거의 현재성’과 ‘기억의 축적성’이 동시에 작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자아’의 붕괴를 겪더라도 ‘다른 자아’를 새롭게 생성해 낼 수 있다. 아니 이미 갖추고 있을 수 있다.

자아는 원래부터가 복잡했던 개념일지 모른다. 애초에 설계 자체가 그렇게 되었던 거니까. 수많은 ‘나’ 경험자들의 주관적 경험들, 그러나 그것은 동시에 비슷한 인류 모두가 겪어낼 수 있는 것들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순식간에 ‘하나의 개념’으로 융화, 융합되어서 ‘자아’라는 추상적 실체가 탄생했을지 모른다.

그래서 불안정할 수밖에 없고, 그 복잡한 구조가 순간순간 깨지는 경험을 인간들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일지 모른다. 왜냐하면 ‘하나의 인간’은 그 모든 것을 다 겪어낸 존재가 아니니까.

keyword
작가의 이전글4장. 사유의 층위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