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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차원 그녀 Aug 26. 2024

아들에게 섭섭하다.

흥! 칫! 뿡!

게임 좀 그만해. TV 좀 그만 봐. 아들은 목 늘어난 러닝셔츠를 입고 온 집안을 돌아다닌다. 동네 백수 삼촌 같다. 친한 친구는 할머니 집에 갔고 나머지 친구들은 학원을 여러 개 다녀서 같이 놀 친구도 없다고 한다. 딸은 방학 내내 관악부 연습과 영어, 수학, 피아노 학원까지 다녀온다고 피곤했는지 아침 10시나 되어야 일어난다. 그런데 오전에 학교 방과 후 1개, 오후에 줄넘기 학원 1시간 다녀오면 온통 자유시간인 아들은 핸드폰 게임에 더욱 집착했고, 그 꼴을 보고 있는 나는 하루 종일 따라다니며 잔소리한다. 나는 그냥 출근하고 싶었다.

      

하루는 아들이 너무 심심해하길래 영화관에 조조 영화를 보러 갔다. 슈퍼배드 4. 영화 티켓은 내가 온라인으로 예매를 한 상태라 팝콘과 콜라는 아들에게 본인 용돈으로 사게 했다. 콜라를 먹지 않는 나는 아이스티로 바꿨는데 추가 요금이 생겼다고 아들이 짜증을 냈다. 그러고는 팝콘 1통, 콜팝, 콜라까지 푸짐하게 시킨 아들은 엄마는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면 절대 본인의 음식에 손을 대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아들 눈치를 보며 팝콘 몇 개를 집어 먹는데 내 손등을 ‘탁’ 친다. 기분 나쁘다. 아침에 먹은 감기약 덕분에 나는 꿈나라로 떠나야만 했다. 얼핏 눈을 떴더니 영화는 마지막 부분이었고, 아들의 음식은 동이 나 있었다. 와! 치사하고 섭섭하다. 12시 넘어서 집에 왔는데 또 점심을 달라고 한다. 너 그 정도 먹었으면 배부른 거 아니니? 퇴근해 온 남편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더니 너희는 초딩처럼 먹는 거로 싸우냐고 놀렸다. 여보, 싸운 게 아닌데? 내가 일방적으로 당했다니까.     


지난주 아들은 별안간 아빠가 불쌍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뜬금없이 나에게 아빠의 근무 시간을 물었다. 

“엄마, 아빠는 근무시간이 어떻게 돼?”

“공식적인 아빠의 근무시간은 아침 8시 30분부터 저녁 7시 30분이지.”

“헐? 아빠 11시간이나 근무해? 근데 어제는 밤 10시에 들어왔어.”

“남은 일이 있어서 야근하신 거야. 그리고 근무시간 내내 아빠 일하시는 거 아니야. 중간에 손님 없으면 쉬어.”

“와, 아빠 진짜 불쌍해. 엄마는 집에서 노는대.”     


띠리리. 결국 하고 싶은 말은 엄마는 집에서 노는데였다. 너무나 섭섭한 나는 아들에게 따졌다. 

“야 엄마 방학이라 조금 쉬는 거야. 엄마 출근할 때 아침 6시에 일어나서 저녁 6시에 들어왔거든. 하루에 2시간씩 운전하는 게 쉬운 줄 알아?”

“그래도 엄마는 토요일에 쉬잖아.”

“아, 아들 너무해.”     


폰을 빼앗긴 아들은 자전거를 타고 남편 사무실에 간다. 왜냐고? 사무실 컴퓨터로 로블록스를 하기 위해서다. 실컷 게임을 하고 집에 온 아들이 두바이 초콜릿을 꺼내 놓는다. 아빠가 나눠 먹으라고 줬다고 한다. 저녁을 먹고 샤워까지 다하고 침대에 누워있던 아들에게 두바이 초콜릿을 먹자고 하니 벌떡 일어난다. 아들은 아직 아빠가 안 왔으니 아빠 것을 남겨둬야 하는 게 아니냐고 우겼지만, 남편의 건강을 끔찍이 생각하는 나는 아빠를 위해서 우리가 빨리 다먹자고 이야기했다. 3등분을 하고 하나씩 입에 물었는데 국숫발 같은 초콜릿 조각들이 입 구석구석 돌아다니는 느낌이 별로였다. 다 먹고 나니 아들은 아빠는 맛도 못 봤는데 우리끼리 다 먹었다면서 또 입을 뗀다. 아빠! 치아 안 좋은 거 몰라? 초콜릿 치아에 안 좋은 거 몰라?     


아들이 변했다. 엄마밖에 없다고 사랑 고백을 하던 아들은 온데간데없고 요즘 아빠 편만 들고 있다. 밥도 내가 해주고, 빨래도 내가 해주고, 준비물도 내가 챙겨주고, 책도 내가 읽어주고, 그중 가장 중요한 숙제도 내가 도와주는데 말이다.      


거의 한 달 동안 지지고 볶던 아이들이 오늘 드디어 개학했다. 딸아이가 8시 5분쯤 나가고 나서 아들이 방에서 나오더니 훌쩍인다. 뭐야 오랜만에 개학이라 친구들 선생님 만날 생각에 감동한 건가. 아니었다. 아들의 말에 의하면 아침에 누나에게 자신의 용돈을 뜯겼다는 거다. 아들에게는 지난주 아빠에게 받은 특별 용돈 삼만오천 원(중고 자전거 판 값)이 있었다. 그런데 누나가 네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면서 뭐라 뭐라고 하더니 돈을 몽땅 빼앗아 갔다고 했다. 참나. 이렇게 억울한 일이 생기면 또 나한테 SOS를 치면서 만날 아빠 걱정만 하네. 찍소리도 못하고 누나에게 돈을 뺏기고 눈물 바람을 하는 아들이 짠해서 누나 오면 엄마가 돈 다시 받아줄 테니 학교에 가라고 했다. 그랬더니 알았다며 가방을 챙기고 신발을 신는다. 아들 걱정하지 마! 엄마가 누나 악당을 무찔러 줄 테야.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방학 동안 내가 당한 게 상당하다. 오늘 아들이 일찍 하교하면 협상을 좀 해야 할 듯싶다. 위기는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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