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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차원 그녀 Aug 21. 2024

이 가족이 사는 방법

세상은 넓고 물건은 너무 많다.

남편은 2남 3녀 중 막내아들이다. 누나와 형이 모두 결혼을 한 상태이다. 조카들도 많은데 막내 누나가 늦둥이 딸을 출산하기 전까지 우리 아들은 막내로 온 가족의 귀여움을 독차지하곤 했다.     


첫딸이 태어났을 때부터 우리는 조카들의 육아용품과 옷을 물려받아서 사용했다. 형님의 막내딸이 우리 딸보다 딱 1년 먼저 태어났으니 그 아이 물건이 우리 집으로 자연스럽게 내려왔고, 신생아 시절에는 기저귀, 물티슈, 분유 빼고는 거의 산 물건이 없는 듯하다.      


둘째가 태어나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당연히 첫째가 쓰던 물건을 이어 쓰고, 옷과 장난감은 둘째 시누와 막내 시누의 물건을 물려받아 사용했다. 둘째가 어릴 때 한창 유행하던 베이블레이드 팽이와 터닝메카드 변신 장난감은 가격이 어마어마해서 기념일에만 1개씩 사주곤 했다. 요즘으로 치면 티니핑의 인기 정도랄까. 막내 시누네 남자 조카와 우리 아들은 5살 정도 차이가 나는데 막내시누 집에도 어마한 양의 팽이와 자동차가 수집되어 있었다. 하지만 조카가 초등고학년에 접어들고 장난감에 흥미가 떨어지자 그 물건들은 자연스럽게 아들의 차지가 되었다. 택배 박스 2개 분량의 장난감이 우리 집으로 배달되어 온 날 아들은 기절하듯 좋아했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가고도 여러 가지 물건을 물려받아 사용 중이다. 옷이라든지, 전집류의 책이며, 그 외 학용품류들도 우리 집으로 넘어오곤 한다. 우리 아이들이 2번째로 사용하고도 깨끗한 물건은 다시 주변에 나눔을 하고 있다. 큰딸의 옷은 막내 시누 집으로 가고 있으며 아들의 물건은 주변 지인들에게 나눠주거나 줄 때가 없으면 당근에 팔아보기도 했다.      


여자 조카들이 많아서인지 딸은 어릴 적 옷이 넘쳐놨다. 매일 패션쇼 하는 기분으로 옷을 골라 입고 등원했는데 하루는 어린이집 선생님이 나보고 00이는 매번 옷이 바뀐다고 옷 사는 데 돈 많이 들겠다고 걱정하시기도 했다. 그래서 웃으면서 다 물려받은 옷인데 새 옷처럼 깨끗해서 선생님이 오해하신 거라고 알려드렸다.    

  

나도 크게 물욕이 없다. 요즘 더더욱 이 증상이 심해졌다. 지난해 아는 선생님 댁에 놀러 갔다가 본인이 살쪄서 못 입는다며 원피스를 2개나 챙겨주신 덕분에 올여름에 정말 유용하게 입었다. 주변에서 보면 약간 궁상맞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으나 우리 가족은 전혀 개의치 않는다. 대신 이런 물건 사는데 쓸 돈을 많이 아낀 덕분에 진짜 결혼 13년 만에 이 정도로 살림살이가 나아진 것 같기도 하다. (그렇다고 크게 부자 아님. 진짜 없이 시작한 결혼생활이라)     


아들이 지금 타고 있는 자전거는 남편이 당근에서 2년 전 사준 3만원짜리 중고다. 그 사이에 바구니도 사고 수리도 한 차례 하였다. 최근에 보니 자전거 안장이 떨어지고 많이 낡았다. 그래서 아들에게 이번 해 생일 선물로 새 자전거를 사주겠다고 말했다. 그 대신 9월부터 영어 학원 가서 열심히 공부하기로 말이다. 아들은 난생처음 영어 학원 레벨테스트를 받고 와서 풀이 많이 죽어 있는 상태다.     

 


태풍이 지나간 오후 아들과 드디어 자전거 전문점에 들렀다. 아들이 저번에 점 찍어두었다는 자전거는 팔려서 없고 사장님이 추천해 주신 3개의 자전거 중 1개를 골랐다. 서비스로 오리도 한 마리 받고, 물통 거치대와 전조등도 설치했다. 분실에 대비해 자전거 자물쇠도 받아왔다. 이전에 타던 자전거보다 성능이 업그레이드되었다. 안장에 앉은 아들의 엉덩이가 실룩거린다.      


새 자전거와 함께 행복한 아들은 집으로 간다. 사거리 횡단보도 앞에서 멈춰 선 아들은 연신 카메라로 자전거를 찍어댄다. 새 차 뽑은 어른처럼 아들의 자전거 사랑도 며칠 갈 듯싶다. 집에 와 아들에게 이야기해주었다. 저번에 네가 탄 중고 자전거도 네가 아끼고 아빠가 수리해 준 덕분에 오래 탄 것처럼 이번 새 자전거도 네가 아끼고 안전하게 타면 오래 탈 수 있다고 말이다.      


나는 새 물건이든 중고 물건이든 주인을 잘 만나면 그 물건의 수명이 연장된다고 생각한다. 쉽게 사고 쉽게 버리는 요즘 아들에게 내가 꼭 알려주고 싶은 가르침 중 하나이기도 하다. 세상은 넓고 물건은 너무 많지만 그 물건을 제대로 쓸 줄 아는 사람은 적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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