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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를 준비하는 자세

큰 그림을 그려보겠어!

by 사차원 그녀

이제 진짜 겨울 같다. 영하권 추위가 찾아왔다. 금요일 교실에서 아이들과 함께 크리스마스 맞이 겸 학급 행사로 케이크 만들기를 했다. 학급 자치 비(운영비)를 탈탈 털었지만 5000원쯤 모자라 나의 동기인 생활부장님께 양해를 구하고 그 반 5000원을 추가로 사용하고 케이크 만들기 세트를 주문했다. 우리 학교는 반별로 학급 자치비가 30만 원인데 부장님은 나에게 5000원이나 빌려주고도 20만 원이나 남았다며 자랑했다. 케이크 만들기 세트는 1개당 16000원이었다. 우리 반은 다섯 모둠이라 다섯 개를 주문했고, 총 80000원이었다. 목요일 오후에 조퇴할 일이 있어서 3시 30분쯤 학교를 나와야 했는데 택배가 그 이후에 도착한다는 문자가 왔다. 조퇴하면서 교무실에 들러 교무 선생님께 사정을 말씀드렸더니 흔쾌히 부탁을 들어주신다고 하셨다. 집에 도착했더니 상품을 연구실 냉장고에 넣어두었다고 사진까지 찍어서 카톡을 보내주셨다. 이러면서 계속 우리 학교가 최고니 다른 곳에 갈 생각 말라며 나를 세뇌하고 있다.


아침부터 등교한 아이들이 시끌벅적하다. 만들기 세트에는 빵과 생크림밖에 없어서 부득이 아이들에게 장식할 과일 등을 조금씩 준비해 오라고 하였다. 분명히 나는 알림장에 소량이라고 적어주었는데 아이들이 넘치게 과일을 준비해 온 바람에 진짜 제과점 케이크 부럽지 않은 케이크를 완성했다. 뭐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모둠별로 초에 불도 붙여서 1년 치 생일파티를 한 번에 했다. 아침부터 교실은 난장판이 되었고 남은 재료 모아서 정리하고 애들이 가져온 접시 연구실에서 설거지한다고 오전부터 진땀을 흘렸지만 엄청 행복했으니 그걸로 만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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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후 집에 와 소파에 널브러져 생각해 보니 진짜 크리스마스가 며칠 안 남았다. 남편은 1달 전 정확히 11월 22일 아침, 라코스테 니트를 한 장 나에게 주었다. 한눈에도 크리스마스에 입어야 할 것 같은 이런 옷을 1달이나 일찍 사주는 내 남편.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는 이런 시즌 상품을 싫어한다. 크리스마스 지나면 입고 나가기 뭐 할 것 같다. 그리고 물세탁이 안 되는 점도 곤란하다. 세탁소 가서 드라이 맡기는 게 너무나 귀찮다. 근데 솔직히 이야기하면 다음 날 학교에 입고 가서 자랑했다. 남편이 사줬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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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을 준 그날 저녁, 남편은 대놓고 자신의 야욕을 드러냈다. 자기는 크리스마스에 꼭 받고 싶은 게 있다고. 근데 조금 비싼데 사줄 수 있냐고 덧붙였다. 뭐냐고 물었더니 아이유 베개라고 했다. 핸드폰을 열어 바로 검색해 보니 베개 나부랭이가 10만 원 가까이했다. 뭔 베개가 이렇게 비싸냐면서 잠을 깊이 자고 싶으면 유튜브나 끊으라고 친절히 알려주었다. 안 사주려고 했는데 진짜 가뿐히 무시하려고 했는데 오늘 드디어 주문을 완료했다. 카톡 친구 추가하고 그래서 5000원이나 할인을 받아서 88,500원에 구입을 완료했다. 화요일까지 도착하면 좋겠는데 조금 걱정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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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띠인 나는 2025년에 삼재다. 재작년에도 작년에도 올해도 나는 너무너무 힘들었기에 나는 내가 삼재인 줄 알았는데 2025년이라니 이럴 수 없다. 나이가 드니 미신 같은 걸 무시할 수가 없다. 남편은 7월 내 생일에 행운을 가져다준다는 물고기 반지를 사주었다. 진짜 13년 동안 받은 생일 선물 중 가장 마음에 들었다. 행운을 불러다 주고 자식까지 잘된다고 하니 믿지 않을 수 없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물고기를 만지며 마음의 안정을 찾곤 했다. 이와 더불어 최근에 토끼띠는 몸에 금을 지니고 있으면 금전운이 아주 좋다는 내용을 유튜브에서 봤다. 토끼띠? 나잖아! 베개를 던지고 나는 새로운 반지를 하나 더 얻어야겠다. 금값은 고공행진 중이지만, 그래서 배게 주고 반지 받기엔 너무나도 미안하지만 나는 고단수이므로, 어떻게 나의 의도를 티 내지 않고 흘릴지 고민을 좀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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