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는 져도 재밌다.
남은 4팀이 경기를 어떻게 펼치냐에 따라 맹구 FC의 운명이 달라진다. 애들 말마따나 쪽팔리게 4학년한테 져서 쪽이 팔린다. 우리 팀 주장 MS이는 복도에서 나를 볼 때마다 선생님이랑 JH 때문에 졌다고 시비를 걸지만, 마음 착하고 진실한 6학년 여자아이가 나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선생님이 못해서 진 거 아니라고 말이다. 너는 천사냐?
어제 화요일 경기는 5학년이 주축이 된 두 팀의 경기였다. 딱 참가 엔트리만 봐도 누가 이길지 예상하기 힘들 정도로 실력이 비등비등한 두 팀이었다. 최상의 시나리오는 2점 차 이상으로 한쪽이 크게 이겨주는 것이다. 하지만 막상 경기에 들어가자 두 팀은 예상대로 실력이 비슷했다. 시원하게 첫 골이 터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상대 팀이 반격으로 또 한 골을 넣었다. 박진감 넘치는 경기에 해설을 맡은 옆 반 선생님의 기분도 업이 되었다. 평소에도 언변이 화려하시지만 오늘은 선생님 멘트가 전문 해설가 뺨을 치고도 남았다.
전반전이 끝나고 짧은 휴식, 그리고 다시 재개된 후반전 경기. 아직 희망은 남아있다. 아무나 2골만 넣으라고 미친 듯이 응원했다. 뽀로로와 ** 친구들 팀이 1골을 더 넣었다. 이번에 골을 넣은 선수는 J군으로 우리 반에 여자친구가 있다. 덩치만 있지 전혀 민첩성이라고는 눈곱만치도 찾아볼 수 없던 그 녀석이 황금 같은 두 번째 골을 넣었다. 내 옆에 앉아 응원을 하고 있던 여자친구 P양을 쳐다보았다. P양도 놀라운 장면 연출에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00아, 네 남자친구 너무 멋있다. 그래서 네가 **이랑 사귀는 거였어. 완전 멋져!” 운동 잘하는 남자가 인기 많은 이유가 오늘 또 증명되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노답5형제가 동점골을 넣고 경기는 2:2 무승부로 끝이 났다. 어제는 골대가 정말 코딱지 만해서 공 넣을 구멍이 없더니 오늘 보니 아주 공이 잘 들어가네. 골대 바뀐 거 아니지? 네. 어제 그 골대 맞습니다. 이제 끝났네요. 내일 경기 결과에 상관없이 우리는 탈락이 확정되었다. (혹시 몰라 뽀로로와 **친구들 팀과 노답 5형제 팀은 승부차기를 했는데 뽀로로와 **친구들이 이겼다. )
오늘 점심시간에는 FC바르사 와 작은 고추가 맵다 팀의 경기가 있었다. 이 팀의 경기 결과는 경기 전부터 예상되었으므로 오늘은 관객이 조금 적었다. FC바르사 팀에는 6학년에서 축구를 2,3,4번째로 잘하는 남학생 3명이 들어가 있다. 그럼 1번째로 잘하는 남학생은 어디 갔느냐? 네 교외체험학습 가서 다음 주에 등교한다고 합니다. 반면 작은 고추가 맵다 팀은 깡다구 하나는 끝내주는 6학년 여학생 3명이 들어가 있다. 모두의 예상대로 전반전에만 FC바르사가 4골을 몰아서 넣었다. 그래도 상대팀 골키퍼(여학생)가 맨손으로 날아오는 공을 다 쳐내서 이 정도로 전반을 마칠 수 있었다. 후반전 양쪽 모두 골키퍼를 교체했다. FC바르사 골키퍼는 장갑을 끼고 있었다. 어 맨손으로 아파서 어떻게 공 잡아? 이런 소리가 관객석에서 나왔고, 좀 있다 FC바르사 골키퍼는 장갑을 벗어 상대편 여학생에게 던졌다. 우와~~~~~~~역시 chill 가이.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 경기장 분위기도 후끈 달아올랐다. 후반전에도 작은 고추가 맵다 팀은 온 힘을 쏟았지만 무리였다. 최종 스코어는 6대 1로 FC바르사의 대승이었다. 큰 점수 차이에도 포기하지 않고 경기를 끝까지 마무리한 작은 고추가 맵다 팀을 크게 칭찬해주고 싶다.
모두의 예상대로 FC맹구와 작은 고추가 맵다 팀은 최종 탈락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 목, 금은 준결승 다음 주 월요일은 대망의 결승전이 열린다. 내일은 수업 시간도 많은데 아이들 응원 피켓이나 만들어봐야겠다. 축구는 생각보다 재밌다. 져도 재밌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