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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벤트는 처음이라

누구를 위한 이벤트인가?

by 사차원 그녀

아파트 창틀 실리콘 코킹 작업을 관리 사무실에 신청하고 나서 2주가 흐른 뒤였다. 엘리베이터에 작업 공지 안내문이 붙여지고 남편 핸드폰으로 업체 문자가 수신되었다. 기존 실리콘 제거 시 먼지가 많이 발생하니 꼭 창문을 닫아 달라는 부탁과 함께.


화요일 저녁 집에 온 나는 걱정이 되었다.

“여보, 아저씨가 13층 말고 다른 층 가서 작업하는 거 아니야? 여기 1301호예요. 종이라도 한 장 써서 거실 창문에 붙일까?”

“별걱정을 다하네. 종이에 우리 집은 특별히 잘 부탁합니다. 거실만 우리 거예요. 이렇게 써라. 아주 그냥 코미디네?”


여기서 나는 멈췄어야 했다. 왜 왜 나는 또 이걸 실행에 옮기는 걸까? 분리 배출하려고 모아 둔 종이상자를 뜯었다. 딸 방에 가서 마커펜과 매직도 찾았다. 음, 어떤 멋진 문구를 써 볼까? 내 생각과 남편 생각을 조합해서 완성했다. 지나가던 아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엄지 척을 해주었다. 아들? 엄마 대단한 거 맞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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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에 앉아서 밥을 먹던 남편과 또 쓸데없는 대화를 이어간다.

“여기, 내 단백질 바도 창문에 2개 붙여. 작업하고 드시게.”

“안돼, 내일 기온 많이 올라간다고 그랬어. 초콜릿인가 물엿인가 그거 아무튼 끈적끈적하게 녹을 거야. 그러면 안 주니 못함”

“그래? 아, 맞다. 작업 끝나면 하자보증서 우편함에 넣어둔다고 하시더라.”


우편함. 그래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남편과 나는 사장님을 위한 간식을 준비해 우편함에 넣어두기로 했다. 거기가 더 안전할 것 같았다. 나간 김에 마트에 들러 음료수를 골랐다. 남편은 시원한 탄산음료를 사자고 했지만 나는 반대했다. 우편함에 눕혀서 넣으면 뜯었을 때 음료가 솟구칠 수도 있고, 탄산은 시원하지 않으면 아무 맛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박카스나 비타 500을 사자고 했는데, 남편은 작업하고 목이 마른 데 박카스랑 비타 500은 갈증만 더 유발하고, 잘못하면 유리병이 깨질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한참 만에 이온 음료를 골라서 나왔다. 집에 와서 이온 음료와 단백질 바를 테이프로 감아서 1층으로 내려갔다. 아저씨가 혹 안 꺼내 가실까 봐 드시라는 메모도 붙이고, 간식도 우편함 안에 넣어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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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집에 올라온 나는 또 남편에게 걱정을 털어놓았다.

“여보, 아저씨가 이거 약 탄 거로 의심하고 안 드시면 어쩌지? 세상에 미친놈이 워낙 많잖아?”

“여보, 오해하지 말고 들어. 당신은 오만 가지 생각을 하면 안 피곤해?”

“나는 모든 일에 철두철미하지. A-Z까지 생각하거든 훗!”


다음날 코킹 작업은 잘 되었고요. 남편 휴대전화로 사장님이 작업 사진도 보내주셨어요. 그리고 우리가 준비해 둔 간식도 챙겨가셨더라고요. 근데 사장님은 저의 이벤트에 아무런 반응을 보여주지 않으셨어요. 문자도 한 통 없었죠. 솔직히 조금 서운하더군요. 근데 남편 말처럼 누가 시킨 것도 아니니까 서운해하지 말아야겠죠? 저 요거 준비하면서 오래간만에 너무 설렜어요. 도파민이 폭발했다고나 할까요? 사장님의 반응은 확인하지 못했지만 저는 이렇게 글감을 얻었으니 만족합니다. 코킹 사장님! 항상 안전에 유의하시고 5년 안에 비 새면 멱살 잡고 싸우러 갑니다. (농담 농담)


줬으면 그만이지.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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