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날 선물은 토스 카드

-원하는 자 글을 써라

4월 중순 올해 중학교에 올라간 딸아이의 생일 선물로 남편과 나는 딸이 그토록 원하던 아이패드를 사 주었다. 그와 동시에 딸 방에 있던 컴퓨터는 아들에게 대물림이 되었다. 작년에 아들이 아빠에게 몰래 써준 이 쪽지를 오늘 드디어 공개한다. 뭐 아빠 덕분인지, 누나 덕분인지 그렇게 소원이 이루어졌다. 아이패드는 교직원 할인으로 내가 주문했고 돈은 남편이 다 냈다.

6학년이 되고 부쩍 친구들과 외출이 잦은 아들이다. 그러면서 자기도 토스 카드를 만들어 달라고 했다. 작년에 딸도 카드를 만들어 달라고 했는데 ‘너 돈 버냐?’ 이 한마디로 무시를 했었다. 카드 이야기는 잠잠하던 차 또 아들이 이야기를 꺼냈다.

“엄마, 친구들이랑 영화관 가잖아. 그 키오스크 현금 결제 안된다고”

“그럼 친구한테 돈 주고 해 달라고 해.”

“매번 친구한테 부탁하면 미안하단 말이야. 그냥 하나 만들어 줘. 내 친구들 다 있어. 나처럼 지갑에 돈 들고 다니는 애는 아무도 없어.”

주변에 우리 아이들과 비슷한 또래의 아이를 키우고 계시는 교무 선생님께 애들 카드 쓰냐고 물었더니 카카오 카드를 쓴다고 이야기해 주셨다. 그리고 편리한 점이 많다고 했다. 음～그렇군요. 체크카드 있으면 이제 병원 갈 때 내 카드 따로 안 챙겨줘도 되고, TV 서랍장에 비상 현금을 준비하는 수고도 덜 수 있겠네요.

집에 와서 선심 쓰듯 아들에게 이야기했다. 네가 토스 카드가 필요한 이유 10가지를 종이에 적어 오라고 말입니다. 흥분한 아들이 방에 들어가서 글씨를 갈겨써 왔네요.

<토스를 해야 하는 이유>

1. 애들이 (토스) 카드를 가지고 있다.

2. 현금은 잃어버리기 쉽지만 토스는 카드라 잃어버리기 어렵다.

3. 토스는 카드를 잃어버려도 재발급하거나 핸드폰으로 사용 가능하다.

4. 돈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

5. 돈을 아껴 쓸 수 있을 것 같다.

6. 공부를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7. 토스에 있는 만보기로 돈을 조금씩 벌 수 있다.

8. 카드를 쓰면 왠지 어른이 된 것 같아 기분이 좋다.

9. 엄마 말을 잘 듣겠습니다.

10. 엄마가 하라는 거 다 하겠습니다.

11. 사랑합니다. 엄무니

이 녀석이 간과한 게 있는데 나는 철저히 T형 인간이다. 8-11번 같은 말도 안 되는 이유에 넘어갈 내가 아니다.

“장난해? 다시 써와! 말이 되는 내용으로 다시 써와. 엄마가 매일 저녁 책 읽어 준 보람이 없네. 자료 조사를 해야 할 거 아냐? 네 친구들 토스 카드 쓴다면서, 그럼 친구들한테 어떤 점이 좋은지 물어보든가. 이걸 엄마가 일일이 가르쳐 줘야 하느냐고”

“화내지 마. 다시 써 올게.”

다음날 퇴근하고 왔더니, 뭐 종이에 또 써 놨군요.

더 구박하면 됐다고 집을 나가버릴 줄 몰라 참았습니다. 다음날 카톡으로 토스 가입을 위한 보호자 인증하기 링크가 날아왔다. 인증을 하고 집에 갔더니 아들은 벌써 카드 신청까지 완료한 상태였다.

“엄마, 카드 5월 1일에서 5월 8일 사이엔 온대.”

“주소 바꿔. 집으로 하면 받을 사람이 없어. 아빠 회사로 입력해.”

그리고 정확하게 토스 카드는 5월 2일에 남편 회사로 배달이 되었다. 마침 그날 집에서 혼자 쉬던(아들만 재량휴업일) 아들은 자전거를 타고 신나게 아빠 회사로 달려가 카드를 손에 넣게 된다. 퇴근하고 집에 왔더니 아들이 시커먼 카드를 꺼내 자랑을 한다. 그리고는 나에게 현금 2만 원을 주면서 자기 통장에 넣어달라고 했다.

“응, 넣었어. 그리고 이거 너 어린이날 선물이야. 퉁치자고.”

“에바야. 이건 돈 주고 산 게 아니잖아.”

“엄마의 시간이 들어갔어. 그냥 선물로 해. 아빠한테 장난감 사주지 말라고 카톡 보내 났어.”

“진짜 엄마는 엄마도 아니야!”

“네, 그렇다고 칩시다.”

그래서 저와 남편은 어제 돈 한 푼 쓰지 않고 어린이날을 무사히 넘겼습니다. 남편과 제가 황매산 철쭉 보고 절에 가서 밥 먹고 돌아왔더니 아들은 친구 집에 놀러 가고 없었습니다. 이제 내년에는 어린이날을 챙겨줄 어린이가 우리 집에 없다는 게 조금 서운하네요.